[UDC Report] 부패한 정부도, 은행도 없다… 1대1로 돕는다

"[UDC2019 Report]-7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30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미국 적십자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모았다. 적십자는 이 돈을 인도적 프로그램에 사용했으며, 다른 지진 구호 기관에도 나눠줬다고 발표했다. 사실은 달랐다. 미국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Chuck Grassley) 상원의원은 1년 넘게 적십자의 아이티 프로그램을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이 낸 5억 달러 성금 가운데 40%가 내부경비 등으로 쓰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적십자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걷은 성금 91억 원 중 구호에 사용된 돈은 12억8400만 원에 그쳤다. 당시 국감에서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대한적십자는 남은 돈으로 33억 원짜리 정기예금에 들었다. 적십자뿐만 아니다. 다른 구호기관으로 흘러 들어간 기금이 어떻게 사용됐었는지 결국 사용처를 밝혀내지 못했다.

 

기부금이 원래 목적대로 온전히 쓰이지 못하는 건 중간에 이를 전달하는 기관, 곧 구호기관의 잘못이 가장 크다. 이들의 도덕성이 의심된다. 아이티 지진 당시 이들을 도우러 간 100여 명의 국내 의료봉사단은 특급 호텔에 투숙했다. 구호를 위해 쓰라고 모은 12억 원의 기금 가운데 4억4000만 원을 항공비와 숙박비로 지출했다.

 

배달료가 왜 이렇게 비싸냐

구호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 받고 있다. 블록체인의 특징인 투명성과 신뢰성이 기부의 이러한 맹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서다. 암호화폐 또는 현금으로 후원된 기금 정보를 기관에서 블록체인에 기록해 저장할 수 있다. 부정한 사용이 이뤄질 경우 이에 대한 추적도 가능하다. 블록체인 상의 송금은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의 승인을 통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소수의 기부금 횡령이 쉽지 않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부 사례를 보여줬다. 산하의 자선재단 BCF(Binance Charity Fund)를 출범, 블록체인을 통해 암호화폐로 기부금을 전달 받아 수혜자에게 직접 필요한 물품을 전달했다. 기부와 자금집행 내역이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기부의 투명성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설사 중간자가 배달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다. 기부금 수혜자에게 현금을 주는 과정에서 송금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다. 쌀ㆍ옥수수 등과 같은 현물 기반의 기부에서 최근에는 현금 기부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부분의 인도주의 기관에서는 일시적인 현물 지원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원이 가능한 현금 지원, 즉 CBT(Cash Based Transfer)를 선호한다.

 

유니세프(Unicef)의 경우, 연간 기부금 규모가 약 5조 원인데 여기에서 환전에만 수수료로 5%(약 2500억 원)을 지출해야 한다. 환율 차이로 인한 리스크도 있다. 또, 난민구제기금의 경우엔 현금을 옮기는 도중 예상치 못한 위험을 만나기도 한다. 요르단 난민 캠프로 향하는 구제기금 수송 차량은 종종 테러단체 등의 공격을 받아 현금을 강탈당한다.

 

암호화폐는 중개 수수료가 거의 없다. 수혜자에게 기금이 거의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암호화폐를 이용하면 길게는 며칠이 걸리는 송금 시간 또한 몇 초 단위로 단축할 수 있다. 비트코인으로만 기부금을 받는 비영리재단 비트기브(BitGive) 창립자인 코니 갈리피(Connie Gallippi)는 “당신이 세계 어디에 있든지 오지의 빈민에게 1대 1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부패한 정부도, 은행도 없다”고 역설한다.

 

“요르단 난민 캠프에선 여러 개의 계좌가 필요 없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은 블록체인의 이러한 장점을 난민 구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6년 추진된 WFP의 ‘빌딩블록스(Building Blocks)’ 프로젝트는 분산원장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중개인 없이 수혜자에게 직접 기금이 전달되도록 한다. 지금까지 요르단 난민 10만6000명에게 6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빌딩블록스가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각각의 수혜자에게 이메일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주소를 제공한다. 인도주의 기관들은 이 주소로 직접 현금 지원을 할 수 있고, 누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 받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기금이 수혜자에게 직접 전달됨으로써 비윤리적인 중간자의 문제, 환전의 문제가 해결된다. 송금 비용 문제도 해결했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송금으로 길게는 3주까지 걸렸던 지원금 송금 과정을 단축해 100만 달러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블록체인을 통한 기금 전달 과정의 투명성 제고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문제도 해결했다. 요르단 난민 캠프에 관여하는 인도주의 기관은 약 45개. 이들이 사용하는 은행들 또한 모두 각기 다르다. 난민들은 의료ㆍ교육ㆍ법률지원 등 필요한 구제를 위해 스스로 정보를 알아보며 발로 뛰어야 한다. 각기 다른 은행을 거래하는 기관들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계좌도 여러 군데 개설해야 한다. 요르단 난민 캠프에 있는 모든 구호기관의 지원을 받으려면 최소 4~5개의 은행 계좌와 출금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정보 비대칭이 발생할 때도 있다. 기관끼리 정보가 교류되지 않으니 운이 좋다면 여러 기관에서 중복으로 수혜를 받을 수도 있다.

 

빌딩블록스의 기술은 지원의 효율성을 높인다. 요르단 사막의 난민캠프에서는 난민들이 여러 개의 체크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홍채인식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ID를 스캔, 계좌 내 잔액으로 거래한다. 빌딩블록스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은행이 아닌 하나의 난민 ID로 지원금을 이체한다. 현금 기반의 CBT를 통해 난민은 필요한 물품 혹은 서비스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CBT는 현물 지원에 비해 장기적으로는 난민의 존엄성을 고취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빌딩블록스를 창안한 후만 하다드(Houman Haddad) WFP 신기술 책임자는 2019년 9월 5일 열린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UDC)에서 “여러 기관이 한 난민을 지원할 때 블록체인의 중립성이 발휘될 수 있다. 우리의 시스템도, 타자들간의 시스템도 아닌, 중립적 시스템이다. 이 중립된 공간에서 여러 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 정보를 통해 중복 수혜를 피하고 지원이 절실한 대상을 찾아낼 수도 있다. 빌딩블록스는 중요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난민 구제에 필요한 정보만을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예를 들어, 성별ㆍ연령ㆍ병력 등을 암호화해 기록한다. 인도주의 기관들은 이러한 정보를 접하고 어떠한 지원이 필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화폐와 정보의 지배력을 소수로부터 네트워크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이양한다.

 

블록체인 ID가 난민을 구원하리라

난민의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에 올라간 정보를 난민을 반대하는 테러단체가 수집할 수 있다. 민감한 개인정보의 경우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될 우려도 있다. UNHCR(유엔난민기구)에서는 난민들에게 무작위 번호를 부여해 정확한 신상을 가린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할 순 있지만, 해당 난민에게 진짜 필요한 구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구호기관에 필요한 정보는 한정적이다. 구제 대상이 아이를 키우는지, 노인인지 등과 같은 기능적 데이터만 있으면 된다. 이 때문에 빌딩블록스와 같은 프로젝트는 이들의 정보를 해싱(Hashing)해 프라이빗 체인에 올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ID34566의 난민은 ‘5세 미만의 아이가 있는 20대 여성’이라는 수준의 정보만을 블록체인에 해싱해 올리면, 이들의 신상을 보호하면서도 구제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ID는 난민들에게도 중요한 이슈다. 전 세계 11만 명의 난민들이 현재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분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시리아에서 독일로 국경을 넘어가는 난민들은 본국에서 신원을 증명할 어떠한 공식 문서도 가져오지 못했다. 평균적으로 난민 생활을 하는 15년 동안 이들은 결혼ㆍ취업 등 사회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난민캠프에서 잉태된 생명들 또한 이들 중 20%를 차지한다. 신원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아이들은 부모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투표도 할 수 없고, 교육이나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재한 사람이 된다. 

 

ID가 없으면 금융거래 또한 어렵다. 지원을 받기 위해 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하지만 ID가 없는 경우 계좌 개설 자체가 녹록하지 않다(사실 ID의 문제는 난민에게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국가 등에서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신분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아들, 혹은 남성 형제들의 계좌를 이용해야 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ID를 통해 지원금을 직접 받을 수 있다. 송금을 포함해 지급ㆍ결제가 가능해지면, 추가로 저축이나 대출 등의 금융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ID가 생김으로써 경제적 자립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다”

빌딩블록스 프로젝트는 아직은 실험 단계다. 구호 프로그램에 범용적으로 적용되려면 인도주의 네트워크들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 하다드 책임에 따르면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관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오해한다. 암호화폐의 가격 자체도 아직 변동폭이 너무 크고, 국가적으로 아예 암호화폐를 금지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는 확신한다. 난민 구제 프로그램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경우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를 빌딩블록스 프로젝트가 입증하기 때문이다. 하다드 책임은 UDC2019 전문가 세션 강연을 이 점을 강조했다.

 

“신원의 문제는 여러 주체들간의 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새로운 기술이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 아직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단점을 늘어놓으며 왜 이걸 인도주의적인 일에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기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많은 돈을 썼는데, 왜 굳이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을 만드느냐는 힐난도 받는다. 그러나 새로운 투자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다.”

 

※9월 4~5일 인천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렸던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2019’를 보고서로 정리했습니다. 총 10개의 글이 차례로 업데이트 됩니다. UDC2019 강연 동영상 및 발표자료는 https://udc.upbit.com/program/detailed_program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업비트의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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