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C Report] 돈의 UX는 안정성! 변동성을 제거하라

[UDC2019 Report]-2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던 18세기. 일본의 한 상인이 쌀 가격의 변동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그의 이름은 혼마 무네히사(本間宗久). 일본에서 ‘거래의 신’ 혹은 ‘장사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아마 금융업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봤겠다. 혼마는 초기 형태의 캔들 차트를 고안, 쌀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확히 말하면 쌀 ‘선물(先物)’ 거래를 통해서 말이다.

 

1700년대 막부(幕府) 시대, 일본 지방의 경제 기반은 농민들이 생산한 쌀이었다. 막부는 지방 귀족(다이묘, 大名)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무가법 제도(강제로 일정 기간 막부 지역에 와서 살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다이묘 입장에선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에 살면서 추가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화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쌀로는 원하는 만큼의 돈을 구할 수 없다. 다이묘들은 그래서, 미래의 쌀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선물(futures)의 탄생이다. 다이묘들은 가을 수확철 이전에 전표를 발행해 상인들에게 미리 주고, 때가 되면 수확한 쌀로 갚는 거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농산물은 기후나 자연재해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홍수나 가뭄 등으로 다이묘가 확보한 쌀의 양이 급감하면, 그 다이묘가 써 준 전표는 그야말로 종이쪼가리 신세가 된다. 상인들 입장에서 전표를 거래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이때 막부가 나섰다.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표의 유통과 상환을 보증했다. 세계 최초의 선물시장이 오사카 도지마 쌀 시장인 이유다. 선물 시장에서는 특정 자산을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에 사거나 파는 거래가 이뤄진다. 선물이 지금은 투기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취급 받지만, 탄생의 배경에는 쌀값 급등락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고 싶은 다이묘들의 필요가 있었다.

 

암호화폐가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

블록체인 산업은 태동기다. 초기 자본주의 시장의 발달 과정으로 치자면 18세기 어디 즈음에 있겠다. 다이묘들이 쌀 전표를 거래한 건 미래 쌀(화폐) 가격의 변동 위험을 피해기 위해서였다. 어떤 목적으로 화폐가 쓰이든 화폐의 기능(교환의 매개, 가치의 척도, 가치저장의 수단 등)을 수행하려면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중간자의 개입도 없는, 국경을 초월한 화폐를 꿈꿨던 비트코인은 어떠한가. 지난 10년간 극심한 가격 변동 흐름을 보여줬다. 비트코인의 단점을 보완하겠다고 나온 알트코인 역시 결코 덜하지 않은, 오히려 훨씬 더 큰 변동성을 나타냈다. 이래서는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조차도 교환의 매개로서의 비트코인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들은 화폐의 기능 가운데 왜 유독 교환의 매개에 집착하느냐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화폐의 기능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건 가치저장의 수단”이라며 “가치저장이 가능할 때부터 인류 문명은 진화할 수 있었다”(지미 송(Jimmy Song),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고 강조한다. 현금과 신용카드, 각종 페이를 두고 누가 하나에 1000만 원 하는, 그것도 전 세계에서 1초에 단 7개의 거래 만이 가능한 화폐를 사용하겠나.

 

일부는 비트코인은 소수점으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가격이 얼마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쪼갠다고 해서 지금 쓰고 있는 돈(법정화폐)에 비해 변동성은 여전히 크다. 애초 설계 자체가 그랬다. 발행량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반감기, 2140년 총 2100만 개 발행(채굴) 완료) 가치가 고정되기는 어렵다.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로써 기능 하겠다면 변동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업계에선 이런 시도를 뭉뚱그려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프로젝트라 부른다.

 

법정화폐에 코인을 페깅하다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최초의 유의미한 시도를 한 곳은 테더(Tether)사다. 이 회사는 미국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테더 토큰(USDT)을 발행했다. 원리는 달러 예치금에 해당하는 만큼만 USDT를 발행하는 식이다. 1USDT 가격은 이론상 1달러다. 실제 USDT의 가격 변동폭은 많아야 0.01달러 수준에 그쳤다(단, 일시적으로 2017년 4월 1USDT 가격이 0.915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2015년 USDT가 첫 선을 보였을 즈음, 암호화폐 업계 전체는 그야말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였다. 그 어떤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선 암호화폐를 구입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막힌 곳도 있었다. 그렇게 법정화폐로 암호화폐를 살 수 없는 이들은 USDT를 통해 코인을 샀다. USDT는 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그 어떤 규제도 전무한 상태의 암호화폐 업계 환경이다. 원칙적으로는 예치금만큼만 USDT를 발행해야 하지만, 예치금을 초과하는 USDT를 발행해도 이를 문제 삼을 만한 곳이 없다. 테더사의 ‘양심’을 전적으로 믿어야 했다. 테더사 입장에선 고객들이 예치금을 얼마나 쌓아두고 있느냐에 불안을 느껴, 소위 ‘뱅크런(bank run)’을 하지 않는 이상 100% 예치금 비율을 유지하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다. 어찌 보면 예치금을, 아무것도 안 하고 쌓아두고 있는 것 자체가 자본의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땐 ‘미련’한 짓이다.

 

테더사의 일탈에 대해 시장은 언제까지고 계속 눈을 감지는 않았다. 곧, 시장 곳곳에서 테더사에 대한 의혹을 쏟아냈다. 예치금만큼의 달러가 실제로 있는지 회계감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테더사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이를 회피했다. 테더사와 관련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테더 스캔들’은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에게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다. 중국에선 아예 정부가 주도하는 일종의 스테이블 코인인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테더사처럼 정체도 불분명한 회사가 발권력을 행사하게 두느니,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게 투명할뿐더러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국가가 아닌 기업이 제3의 국가의 화폐를 페깅(pegging)해서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금융 환경이 낙후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이런 시도가 이뤄진다. 두나무의 블록체인 플랫폼 자회사 람다256이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 루니버스(Luniverse) 기반의 ‘루피아 토큰(Rupiah Token, IDRT)’이다. 루피아 토큰은 인도네시아 법정화폐인 루피아(Rupiah, IDR)와 일대일로 페깅되는 암호화폐다.

 

루피아 토큰 발행 취지에 대해 박재현 람다256 대표는 2019년 9월 4일 열린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UDC)’에서 “지역화폐와 같은 스테이블 코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범용성이 떨어지고 정부와 같은 특정 기관이 발행해 다른 기관들이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루니버스가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곳이 스테이블 코인”라고 언급했다.

 

제스 소토요(Jeth Soetoyo) 루피아 토큰 설립자 역시 “현재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포화 상태라고 하지만 미국 달러화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은 아직 크다”며 왜 생소한 법정화폐를 페깅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루피아 토큰은 동남아 암호화폐 거래소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업비트에서 활용되는 등 그 쓰임새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업비트 또한 두나무가 운영하는 거래소인 만큼, 자사의 경영전략과 밀접하게 루피아 토큰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법정화폐 ‘바구니’에 코인을 페깅하다

하나의 법정화폐에 가치가 연동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과정이 비교적 간단 명료하다. 해당 법정화폐의 예치금만큼만 똑같은 수량을 발행하면 된다. 그러나 특정 법정화폐에 해당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가 좌우되기 때문에 페깅된 법정화폐 가치가 급락하면 그 스테이블 코인의 존재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극단적이긴 하지만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의 상금이 된 10조 짐바브웨 달러를 떠올려 보자).

 

블록체인 기반의 글로벌 핀테크 기업 테라(Terra)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테라에 페깅했다. SDR은 IMF가 발행하는 유가증권으로 미국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중국 위안 등을 일정 비율로 섞어 발행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가장 각광받았던, 하나의 학파를 만들어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주장한 ‘세계공용화폐(Bancor)’ 이론이 SDR을 통해 구현된 셈이다. 테라는 SDR 페깅을 통해, 단일 법정화폐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제거했다.

 

지난 6월 나온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Libra)도 여러 법정화폐를 한 바구니에 담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최근 알려진 리브라 토큰의 페깅 비율은 미국 달러 50%, 유로 18%, 일본 엔 14%, 영국 파운드 11%, 싱가포르 달러 7% 등이다. 통화 바스켓 목록에 중국 위안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7월 열린 페이스북 리브라 청문회에서 데이비드 마커스(David Marcus) 리브라 총괄은 “협회 원칙상 리브라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의 기업이 리브라 협회에 가입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불안정한 코인으로 안정성을 추구한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Decentralized) 정신을 고수하는 이들에겐 화폐의 변동성을 줄이고자 중앙화된 법정화폐에 의존하는 앞선 시도들이 못마땅하다. 이들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탈중앙화 방식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 블록체인을 금융에 접목한 탈중앙화 금융,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 프로젝트를 말할 때 한 번쯤은 불리는 ‘메이커 다오(MakerDAO)’의 ‘다이(DAI)’가 대표적인 예다. 다이는 이더리움을 담보로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때 다이 발행의 주체는 이더리움을 담보로 잡은 개인들이다. 지속 가능한 다이 생태계를 위해 대출이자(안정화 수수료)도 지급한다. 대출이자는 2019년 9월 말 기준으로 약 10.5%다.

 

다이의 발행 과정은 간단하다. 메이커 플랫폼에 이더리움(ETH) 지갑을 연동해 부채담보부포지션 (Collateralized Debt Position, CDP)을 개설하면 된다(메이커다오는 향후 담보 옵션을 이더리움 외에 다양한 암호화폐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CDP는 스마트 컨트랙트 형태라 거래 내역을 누구나 이더스캔(Etherscan)에서 확인할 수 있다. CDP는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집 대신에 ETH을 담보로 잡고, CDP로 다이를 생성한다. 예를 들어, 150만 원어치의 ETH로 최대 100만 원 가치의 다이를 대출받는 식이다.

 

만약 ETH 가격이 급락해 담보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추가로 담보(ETH)를 더 넣거나 다이를 상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담보는 자동으로 청산된다. CDP가 자동 청산되면 담보물인 ETH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경매에 부쳐진다. 이 과정에서 자동청산을 당한 이용자에게는 추가로 13%의 벌금과 수수료가 부과된다(부실 대출에 대한 패널티인 셈이다). 이렇게 부실대출을 해결해 다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키퍼(keeper)다. 이용자들은 키퍼가 돼 시세보다 저렴한 ETH를 매입해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다이 가격은 ETH 양에 의해 1달러로 유지되게끔 설계됐다. 다이 가격이 1달러를 웃돌면, 사람들이 더 많은 다이를 발행한다. 공급이 늘면서 다이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다이가 1달러를 밑돌면, 이용자들은 더 많은 이더를 담보로 맡겨야 한다. 다이 발행량이 줄면서 다이 가격은 1달러로 수렴한다.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맞추는 자동화 메커니즘을 통해 다이의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디파이의 경우 중앙화된 기존 제도권 시스템과는 달리 담보에 대한 리스크 설정이나 이율 변동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미흡하다. 실제로 최근 과연 언제까지 ‘1다이=1달러’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다. 다이의 가격은 ETH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안정화 수수료가 올 들어 0.5%에서 한때 19.5%까지 치솟기도 했다. 실생활에 적용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9월 4~5일 인천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렸던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2019’를 보고서로 정리했습니다. 총 10개의 글이 순차적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UDC2019 강연 동영상 및 발표자료는  https://udc.upbit.com/program/detailed_program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업비트의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UDC2019 Report: 서비스가 블록체인을 증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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