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동네잡지가 10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

 
그와는 인터뷰 때문에 만난 적이 있었다. 홍대의 동네잡지 <스트리트 H>에서 내가 운영하던 북 바(Book-Bar)를 취재하러 온 자리였다. 그때는 인터뷰를 받는 것이 나였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그였다. 어떤 인터뷰는 형식적인 질문만 하다 끝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인터뷰는 내가 차마 나 자신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을 대신 던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인터뷰하는 사람이 새롭게 보인다. 책상 너머 무채색이었던 대상이 화려한 색을 드러내며 세계로 나온다. 내게 질문을 던지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잔잔한 물결로 인다. 정지연 <스트리트 H> 대표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깊었고, 그래서인지 나를 오래 따라다녔다.

‘노동의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는 이 시대에, 여러 직업을 가진 여성 노동자로서 내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나를 오래 따라다녔던 그 질문을, 이번엔 그녀에게 건네보기로 했다.

정지연 대표는 무가지(무료로 배포하는 잡지) <스트리트 H>를 10년 넘게 발행하고 있다. 2009년 6월 창간한 <스트리트 H>는 디자인 스튜디오 ‘이공삼’에서 발행하는 홍대의 동네 잡지다. 홍대의 트렌드를 만들어온 사람들과 그들의 공간, 활동을 소개한다. 동네 잡지로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

잡지사에서 출판사로, 출판사에서 동네 잡지 발행인이 되기까지. 그녀는 어떤 생각의 실을 엮어왔을까. 이 번잡한 홍대를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비 오는 홍대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도 모를 정도로 다양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홍대의, 홍대에 의한, 홍대를 위한 잡지

– 어떻게 잡지를 발행하게 됐나.
“<스트리트 H>를 시작할 때가 30대 후반이었다. 잡지사 기자로 12년 일하다가 출판계로 넘어온 지 3년 차쯤 되던 시기였다. 다음 진로를 고민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에서 독립해 디자인 스튜디오를 꾸리던 식구(장성환 발행인)가 그러더라. 지금 또 누군가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보다 우리만의 일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어차피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일한다고 해도 몇 년 후에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함께 프로젝트를 굴려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조금씩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퇴사 후 잡지 창간은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 길을 먼저 간 셈이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막판에 피로가 심했다. 당시 주변에 출판사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참에 출판 쪽에서 일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장르 소설을 다루는 작은 출판사로 옮겼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회사 사정이 변하면서 어느 순간 내부 경쟁이 당연한 것처럼 됐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보니 번아웃이 왔고, 결국 그만두게 됐다.”

– 그만두고 바로 <스트리트 H>를 만든 건가?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에서 일 년 정도 지냈다. 식구가 ‘한 번쯤 외국에 머물면서 지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나’라고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낮에는 저렴한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당시 내 생활에 중요한 가이드북이 있었는데, <타임아웃 뉴욕>과 <L 매거진>이었다. 잡지가 나오면 매주 동선을 짰다. 두 권을 바이블 삼아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고 귀국할 때도 전권을 챙겨왔다. 그게 홍대에서 <스트리트 H>를 창간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홍대에서 그런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 왜 홍대를 좋아하나.
“홍대는 가장 많은 새로움이 레이어 된 동네다. 음악, 출판, 디자인, 다이닝 등 차곡차곡 많은 시도가 쌓였다. 트렌드를 발신하고 그걸 확산시킬 수 있는 데가 아직은 홍대인 것 같다. 지금이야 서울 어디든 공유공간 플랫폼이 많아졌지만, 그걸 가장 먼저 사회적인 메시지로 던졌던 건 홍대의 ‘어쩌다가게’였다.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홍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금수저’여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던 건 아니었을까. 금수저라고 해서 좋은 결과를 낸 걸 폄하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비교해보는 건 도움이 될 만한 팁 같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스트리트 H>는 무가지라 생계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시작하거나 지속하는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나.
“사실 시작할 때 별생각이 없었다. 잡지 창간의 중차대함을 생각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더라면 아예 시작도 못 했을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난 프로젝트를 해본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

나는 에디터였고, 식구는 디자이너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공동으로 잡지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다. 또 나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쏠쏠히 일을 하고 있었고 장 대표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회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생계비에 아주 쪼들리던 상황은 아니었다.”

맛이나 멋보다는 사람

 
– 에디터 고용비를 다른 곳에서 벌어 채운다고 들었다. <스트리트 H> 외에 하고 있는 다른 활동은 무엇인가.
“3~4년쯤 됐을 때 주변에서 <스트리트 H>의 작업이나 기획, 디자인 작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생겨났다. 특히 로컬 아카이빙이라는 측면에서 이 잡지의 사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분들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 해비타트 같은 NGO 단체들의 연차보고서나 사보, 리플렛 작업을 많이 했다. 또 서울시나 지자체의 간행물 작업도 했다.

용역사업도 늘었다. 대표적인 것이 7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온라인 뉴스레터 작업이다. 그 밖에 정부 부처의 SNS 홍보 일도 하고 있고, 서울여성공예센터의 온라인 뉴스레터 제작도 대행하고 있다. 네이버, CJ나눔재단 등의 기업과도 작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스트리트 H>만의 철학이 있다면?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지역을 만든다. 이게 우리의 철학이다. 자기만의 콘텐츠·관점·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카페·숍·문화공간 등을 내면, 그 지역 자체가 남다른 개성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 더 멋진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정착하게 된다. 일종의 선순환이다.

<스트리트 H>의 면면을 보면 다른 잡지처럼 맛집·공간 소개가 있지만 섭외의 기준이 다르다. 맛이나 멋보다는, 공간을 운영하는 주인을 본다. 그 사람이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꾸리는 공간을 거점 삼아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정지연 대표 인터뷰 ②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