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발레리나 신아현,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Photographer Mirka Kleemola, Finnish National Ballet 제공

핀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춤추던 행복한 발레리나 신아현(만 24세)이 와인의 고장 프랑스 보르도로 새로운 도전을 떠난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보르도 국립발레단에서 춤출 날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만나 핀란드를 떠나는 그녀의 마음을 들춰봤다.

어쩌다 핀란드에? 

신아현 : 2016년 말, 대학생활을 마무리할 즈음, 유럽에서 발레리나로 활동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에게 오디션 기회에 대한 문의를 했다. 그중 핀란드 국립발레단의 Étoile(수석무용수 중 최고 스타)인 하은지 선배가 단장에게 이력서와 비디오를 이메일로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결과 12월에 핀란드와 노르웨이 두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보통 시즌 시작이 8월이라 결과를 바로 알 수 없기에 2016년부터 매년 2월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그랑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랑 오디션은 여러 나라의 발레단 단장들이 한 곳에 모여 단원들을 뽑는 통합 오디션 행사로 젊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만 17~26세)들에게 더 많은 기회 제공을 목표로 생겨났다.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은지 선배가 그랑 오디션 준비 소식을 단장에게 넌지시 알렸다. 단장은 은지 선배에게 내가 그랑 오디션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갈까 봐 우려가 된다며, 발레마스터들과 상의해서 결정을 앞당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은지 선배가 적절하게 단장을 재촉한 덕에 예외적으로 1월에 핀란드 국립발레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1월? 어두운 헬싱키 겨우살이: 첫 직장, 첫 해외생활

신아현 : 처음에는 적응을 하느라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잘하고 있는지 조차도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새 시즌이 시작된 8월이 돼서야 여유가 생겼고 매우 즐거웠다. 은지 선배 덕에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발레단 분위기가 가족처럼 다정하게 챙겨주는 분위기라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에서는 영화 블랙스완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배역에 대한 경쟁심리나 질투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군무를 하다가 솔리스트를 맡았을 때, 다들 내게 와서 좋은 역을 맡았다며 축하해주었다. 조금 의아해서 은지 선배에게 원래 이러냐고 물었는데, 핀란드 국립발레단의 독특한 장점이라고 했다. 덕분에 쉽게 적응한 것 같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은 대략 핀란드 무용수가 60%, 외국인 무용수가 40%를 차지한다. 보통 핀란드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 하고 차갑다고 들었는데, 발레단에 있는 핀란드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상냥하고 기쁜 일은 같이 축하해주고 슬픈 일은 같이 슬퍼해준다. 아무래도 무대에서 표현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일반인보다 외향적이어서 표현을 잘하는 게 아닐까 싶다. 외국인 무용수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체코, 영국, 미국, 일본, 중국, 터기 등 다양한 나라 출신이다.

일과 시간은 물론 퇴근 후에도 동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도 하고 볼링을 같이 치러 가기도 했다. 클럽에 가서 같이 즐기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동료들과 같이 보낸 휴가다. 부활절 휴가가 긴 편인데, 그 기간 동안 11명 정도가 유럽의 다른 나라를 같이 여행했다. 학교 동기 중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나폴리에서 발레단 동료들과, 2019년 부활절 휴가, 신아현 제공

핀란드 국립발레단 무대 그리고 부상

신아현 : 왜 춤을 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겠다. 많은 연습 끝에 무대에서 춤춘 뒤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좋다.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무대 중독이지 싶다. 무대에 서기 전에 엄청 떨리는데, 기분 좋은 떨림이다.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랄까? 막상 무대에 서면 떨리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춤추게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발레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핀란드에서 평범한 일상도 즐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졌다.

군무로 시작했지만, 1st 솔리스트까지 해봤다. 매번 솔리스트를 맡은 것은 아니지만, 2년 안에 솔리스트를 몇 번 해봤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이지만 아쉽게도 지난 12월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단장이 바뀌면서 2년 이상 발레단과 함께한 계약직 무용수들의 계약이 일괄 종료되었다. 새 단장의 정책이었다. 많은 동료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나섰고, 나도 올초에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잘 찾았다.

이번 시즌에는 다행히도 부상이 없었다. 이전 시즌에는 부상이 잦았다. 돈키호테에서 여주인공인 키트리의 친구들 역으로 처음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갑자기 주어진 기회라 욕심이 지나쳤다. 연습 중에 크게 뛰는 동작을 하다가 공중에서 바닥으로 손을 짚지 못한 채 갈비뼈로 떨어졌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금이 가진 않아서 타박상이라 생각하고 연습을 계속했다. 그런데 기침을 하거나 숨만 쉬어도 아파서 MRI를 찍었더니 엑스레이에선 보이지 않던 실금이 발견됐다. 결국, 그 역을 하지 못하고 한 달 동안 누워 지냈다. 다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다.

2년 반 동안의 핀란드 국립발레단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2018년 시즌에 공연했던 Suite en Blanc (하얀 모음곡)의 pas de cinq이다. 발레단에 입단해서 처음으로 군무가 아닌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이야기 없이 춤 자체의 미를 추구하는 작품으로 무용수의 테크닉이 많이 요구되는데, 내가 맡은 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습하는 동안 힘들었지만, 은지 선배와 Ilja Bolotov의 조언 덕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솔리스트로서의 첫 공연은 굉장히 떨려서 실수도 꽤 했지만, 반복되는 공연으로 자신감이 생기면서 점점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공연 후 커튼콜 때, 항상 군무로 같이 인사하다가, 무대에서 혼자서 인사를 하고, 관중의 박수갈채를 독차지했을 때의 황홀함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발레에서 역할에 따른 무용수 칭호 정리:

Étoile (수석무용수 중 최고 스타, Lead principal dancer), Principal dancer (수석무용수), 1st soloist dancer, 2nd soloist dancer, Corps de ballet (군무, Dancer)

Suite En Blanc에서 신아현 (오른쪽), Photographer Mirka Kleemola, Finnish National Ballet 제공

300대 1의 경쟁률, 보르도 국립발레단 오디션

신아현 : 계약 종료를 통보받고 이곳저곳 오디션을 많이 봤다. 독일의 여러 도시와 스웨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서인지 오디션으로 스쳐 지나온 곳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좋은 소식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발레단의 친구들이 좋은 결과가 곧 있을 거라며 나를 많이 다독여주었다. 오디션 기간이 막바지에 이르러 내게는 보르도와 뮌헨의 오디션만이 남아있었다.

발레리나 1명을 뽑는 보르도 오디션에는 발레리나 300명이 모였다.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밤 10시 반에 끝난, 12시간을 넘긴 마라톤 오디션이었다.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된 오디션은 바 동작을 시작으로, 센터 동작, 점프 동작, 바리에이션 작품 순으로 진행되었다. 매 단계마다 많은 지원자들이 탈락했다. 엄청난 경쟁률 덕에 준비해온 작품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고 오디션을 치렀다. 다행히도 마지막까지 남은 25명에 속했다.

결과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번호가 불렸다. 혼자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보르도 국립발레단 단장이 프랑스어를 하냐고 물었다. 못한다고 하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가능하다고 하니까, 다음 시즌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린다. (그녀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1시간 동안의 긴 회의를 통해 내가 선택되었다.

고되긴 했지만 핀란드에 있어서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러 갔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오디션을 보느라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휴식 없이 살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이렇게나 많은 오디션을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해외 오디션을 준비하면 한 달 정도를 생각하고 유럽에서 지내면서 오디션을 돈다. 기간이 한정되기 때문에 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도 상당하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남 프랑스 보르도로…

신아현 : 성격상 도전은 회피하지 않는데 반해,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려 한다. 새로운 길보다는 늘 다니던 길을 선호하고, 먹던 음식만 먹고, 영화도 한번 빠지면 그 영화만 본다. 그런데 핀란드에 왔다. 이상하게도 느낌이 좋았다. 바쁘고 웅성웅성한 도시를 꺼려하는데, 헬싱키는 굉장히 조용하고 심심한 회색빛 도시였다.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고 잔잔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떠나는 게 아쉽다.

다행히 보르도의 느낌도 좋았다. 아름다운 도시인 데다가 핀란드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을 상기시켜주었다.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잘 적응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르도에 있다 온 발레단 친구가 살기 좋은 곳이라며, 기차로 40분 거리에 바다가 있어 주말에 기분 전환하기에 좋다는 정보도 알려주어서, 보르도에서의 생활이 더욱 기대된다.

핀란드 사람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따로 핀란드어를 배우지 않았는데,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하지 않으면 사는데 불편하다고 하니까 걱정이 된다. 게다가 보르도 국립발레단에 있던 선배 발레리노가 한국 국립발레단으로 돌아가서 발레단에 한국인은 나 혼자다.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니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은 민감한 계약 이야기: 핀란드 vs 보르도

신아현 : 시즌 중간에 일하게 된 예외적인 상황이라 처음 계약은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였다. 다행히도 그해 2월 바로 연장 통보를 받았다. 다음 시즌인 2017년 8월부터 5월까지의 계약이었다. 시즌이 아닌 6, 7월은 계약기간에서 제외되었다. 6, 7월의 공백 없이 발레단에 계속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종신 단원들과 달리 계약직 단원들은 시즌 동안인 10개월만 발레단에 소속되어 있다. 2달간의 공백은 보통 노동조합 가입을 통해 노동조합에서 지원을 받는다. 예전에는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처리가 복잡해 보여서 실업급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구비서류를 노동조합에 제출해서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실업급여는 월급과 비례한 금액이 지급된다고 들었다.

보르도 국립발레단에서도 핀란드 국립발레단처럼 군무로 계약했다. 보르도에서 차근차근 성장해서 주역까지 해보기를 소망한다. 1년 계약을 시작으로, 잘 적응하면 2년 계약, 3년 계약을 거쳐, 6년 후에는 종신 단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보르도 국립발레단은 핀란드 국립발레단과 달리 시즌이 9월에 시작해서 7월 중순에 끝난다. 감사하게도 보르도 국립발레단은 9월부터 8월 말까지 휴가를 포함하는 1년짜리 계약서를 보내주었다. 대학생에서 핀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한국 발레단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지만, 유럽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더 유익할 것 같아 당분간은 유럽에 머무르고 싶다.

어쩌다 발레를?

신아현 : 여섯 살에 동네 발레 학원에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발레를 전공으로 할지 취미로 할지 여부를 물으시길래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수영, 태권도 등을 해봤는데 차분히 앉아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2년간의 다양한 경험은 나를 다시 발레로 돌려놓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형적인 발레리나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도 있지만, 예중, 예고, 대학교 순으로 발레리나로의 성장을 경험했다. 요즘은 홈스쿨링과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건너뛰고 더 많은 시간을 발레에 할애하는 친구도 있다고 들었다.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를 꿈꾸며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구는 교육자로, 누구는 안무가로 진로를 살짝 틀기도 한다. 몸의 유연성을 활용해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발레리나가 되는 길이 까다롭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슬럼프를 겪었다. 크게 흔들렸지만 제자리를 찾았고, 오히려 발레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 덕에 한동안 새벽부터 저녁 저녁 늦게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그 이후 아직까지는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 발레리나의 수명은 짧다. 그나마 조금씩 길어져서 현재는 46살 정도까지 활동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가 아닌 삶은 그려보지 못했다. 은퇴 후 삶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며…

발레리나 친구 덕에 핀란드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10년 넘게 꾸준히 관람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자연스레 몇몇 무용수들의 춤출 때의 특징을 눈이 기억하게 되었다. 무대와 거리 때문에 무용수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지만, 몸짓만으로 구분이 되는 무용수의 수가 늘고 있다.

신아현도 그중 하나다. 처음에는 군무인 데다가 비슷한 키의 일본인 무용수와 종종 같이 무대에 올라서 그녀를 찾기가 어려웠다. 무대에서 그녀를 찾는 게 익숙해지고, 어떻게 춤을 추는지 눈여겨보는 재미가 쏠쏠해졌는데, 아쉽게도 그녀의 춤을 더 이상 핀란드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단장이 야속하다.

Suite en Blanc의 제너럴 리허설에서 손을 심하게 떨던 소녀 같은 모습은 어느덧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에서 춤추던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보르도에서의 새로운 출발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 그녀의 춤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Brava, 신아현!

* 북유럽연구소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