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나비가 되셨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아직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먼길 떠나시니 황망하기만 합니다. 평화어머니회에서 지난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4박 5일 동안 오키나와 평화원정을 다녀왔습니다.
 
첫날 숙소에 당도하기 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평화의 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억울하게 끌려가 희생을 당하신 분들을 위해 위령제를 드리는 것으로 평화원정 첫날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1천 명 이상의 조선 여성들을 비롯해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오키나와 연행 조선인들 희생자 비석이 있는 곳입니다. 평화의 비에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 새겨진 비석에 올라 있는 희생자는 441명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이름조차 없는 빈 비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두 번째 날인 22일에는 위안부 숙소가 있는 곳, 강제로 끌려와 희생당하신 분들이 묻힌 곳, 슈리성 등을 둘러보며 희생자의 삶을 기억했습니다. 위안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 버젓이 증거로 남아 있는데 아베는 여전히 위안부 문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2005년 사이판에 갔을 때 작은 나무 십자가 세워진 재패니즈 터널(Japanese Tunnel)이라는 구덩이를 보았습니다. 조선인 위안부들을 그곳에 두고 병에 걸려 죽으면 한 켠에 매장했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사이판, 오키나와 등 곳곳에 일본군은 위안소를 차리고 강제로 끌려 온 조선인 처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옛 왕궁 슈리성 지하까지 동굴을 뚫고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현지인들이 증언합니다. 동굴의 입구는 나무로 위장이 되어 있고 위안부들이 있었다는 동굴과 구덩이, 두 개의 위안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은 1944년부터 오키나와의 외딴섬 도카시키(渡嘉敷)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종전을 맞았던 배봉기 할머니가 거주하던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 사탕수수밭 근처 허름한 헛간 같은 곳에 살다가 1975년 불법체류로 강제추방 위기에 처해 당국에 자신의 사연을 밝히고 특별영주 자격을 얻었다지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김복동 할머니가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하셨다지요. 이후 할머니는 1993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으며, 미국·일본·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인권운동가요 평화운동가의 삶을 사셨습니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하셨고요.
 
그런데도 일본은 공식 사과는커녕, 오키나와와 한국, 대만, 곳곳에서 자행한 전쟁 범죄 사실을 감추고 지우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이 섬은 왜 조용해졌을까
 왜 말하려 하지 않는가
 여자들의 슬픔을
 조선반도의 오빠 언니들의 얘기를
 갈라지고 끌려온 오빠들
 작열하는 뱃바닥에서 숨을 거두어
 오키나와 이 땅에서 수족이 찢겨지고
 영혼을 짓밟힌 오빠들이여
 전쟁이 끝나 시간이 흘렀어도
 이 땅에서 군화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빼앗긴 땅 사라진 마을 여자들의 비명은 여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버린 채
 오빠들이여
 아직 공양도 못 받고 석회암 틈에 파묻힌 뼈 뼈 뼈
 고향선산에 돌아갈 수도 없는
 오빠들이여
 우리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직도 군화에 짓밟히고 있는
 오빠 언니들의 영혼에
 깊이 머리를 숙인다
 일본군 성노예로서 짓밟힌 언니들
 징용자로서 희생당한 오빠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인다
 머지않아 굳게 열매진 봉선화씨가 터져
 서로 바다를 건너 꽃피기를 믿으며
 오빠 언니들이여 그대들이 겪어오신 고난을 전하며
 지구상에서 전쟁과 군대를 뿌리뽑을 것을
 이 땅에서 돌아가신 오빠 언니들의 영혼에
 우리는 맹세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지역에만 모두 146개의 위안소가 있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두 곳이라고 합니다. 
 
1992년 1월 8일 위안부 10명이 첫 수요시위를 시작한 이래 2019년 1월 30일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 이번에는 할머니가 안 계셨지만 “끝까지 싸우라”고 당부를 하셨다지요.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1000번째 집회가 열렸지요. 단일 집회로 세계 최고로 기네스북에 올랐고요. 1000회 집회에서 ‘위안부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졌습니다. 일본은 즉시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억압했고 대학생들이 소녀상 지킴이로 나섰지요.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사과와 보상을 논의해야 함에도 늘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오후 2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확인’에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관련 구체적 해결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도 말이지요.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나 공식 사과도 없고 피해 당사자들 의사와도 무관하게 10억 엔에 ‘한일위안부 합의’를 체결했지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김 할머니를 비롯해 분노한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지난해 8월 접수한 위안부 피해자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1차 변론기일이 또 3월 14일로 연기되었다고 하는군요.

문재인 정부는 23명 밖에 남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 계신 동안 일본의 공식 사과와 적절한 배상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아베 정권은 여전히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교과서에서 지우거나 왜곡하고 있으니까요.
  

   

 
2011년 집회가 끝나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산타가 되셔서 학생들과 참가한 활동가들에게 수면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로 주셨지요. 양말 위엔 나비가 그려진 노란띠지에 길원옥 할머니 손글씨로 ” 여러분에게 평화”라고 쓰여 있었죠. 이제 먼 길로 소풍을 떠나신 김복동 할머니, 나비처럼, 할머니의 영혼도 지유롭고 평화로우시길 기원해 봅니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조문객에게 나눠주는 기억팔찌에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 김복동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반드시 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고 끔찍한 전쟁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전쟁과 무기 없는 평화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