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바다표범이 함께 즐기는 해변

    
복숭아 농장 한가운데 있는 숙소가 마음에 든다. 아침마다 납작한 복숭아를 따서 먹으며 농장 주위를 산책한다. 농장을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을 따라 걷고 싶은 유혹도 느낀다. 농장에 머물면서 며칠 동안 농장 일을 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에 좋은 곳이다.
 
큰 맘 먹고 찾아온 뉴질랜드 여행이다. 아무리 이곳이 맘에 들어도 숙소에만 있을 수 없다. 오늘은 200km 정도 떨어진 더니딘(Dunedin)이라는 도시를 찾아 나선다. 뉴질랜드 남섬에서는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다음으로 큰 도시다.
 
목적지를 향해 남서쪽으로 뻗은 도로를 운전한다. 구릉 위로 끝없이 계속되는 도로는 한가하다. 가끔 작은 동네를 지나치는 외진 길이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절벽 아래로 큰 물줄기가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을 지나친다. 목적지 없이 운전만 해도 좋은, 흔히 이야기하는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목적지 더니딘이 가까워지면서 자동차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시내 한복판에서는 도로를 막아놓고 농구 게임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도로를 막고 농구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시내 중심가에 주차했다. 한눈에 보아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거대한 교회가 도시 한복판에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1800년대 중반에 이곳으로 정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일까, 유독 규모가 크고 오래된 교회가 자주 눈에 띄인다.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여느 도시와 다르게 벽에 그린 그림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좁은 골목 벽이 그림으로 가득한 곳도 있다. 보통 수준을 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전시장을 걷는 기분으로 천천히 벽화를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동차로 도시를 돌아본다. 교육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고풍 넘치는 건물을 자랑하는 대학이 보인다. 이곳에서 유명한 오타고 대학(University of Otago)이다. 주차하고 잠시 대학에 들어선다.

주말임에도 내일을 이끌어갈 많은 젊은이가 교정을 활보하고 있다. 젊은이와 어울려 잠시 교정을 서성인다. 기분이 좋다. 오타고 대학은 1800년 중반부터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고 한다.
 
이 도시를 찾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앨버트로스(Albatross)라는 바닷새가 서식하는 곳이다. 도시 외곽의 바닷가를 따라 운전하며 로열 앨버트로스 센터(Royal Albatross Centre)를 찾아 나선다. 내가 사는 호주에는 로열(Royal)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기관과 건물이 많다. 뉴질랜드에도 로열이라는 명칭이 자주 쓰인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앨버트로스가 서식하는 장소는 바다로 길게 뻗은 반도 끝자락에 있다. 도로를 넘칠 것 같이 찰랑대는 바다를 끼고 추월선도 없는 작은 2차선 도로를 달린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바다의 작은 물결 위에는 구름과 파란 하늘이 교차하고 있다. 바다 건너에는 작은 동네를 울창한 숲이 품고 있다. 주위 풍경이 빼어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운전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언덕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다른 관광 명소와 다름없이 관광버스, 캠핑카 등으로 복잡하다. 언덕 위에는 큼지막한 건물, 로열 앨버트로스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심한 바닷바람을 피해 서둘러 센터에 들어갔다. 규모가 크다. 이곳에는 앨버트로스라고 불리는 바닷새에 대한 정보가 차고 넘친다. 자세히 보니 갈매기와 닮았다. 그러나 갈매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새다. 먼 바다까지 날아가 먹이를 구할 것이다. ‘광장’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탄 배를 따라 왔다는 새는 갈매기가 아니라 앨버트로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센터에서 나와 바닷가로 난 산책로를 걸어 해변에 있는 전망대까지 내려갔다. 전망대에서는 관광객들이 사진도 찍으며 해변을 주시하고 있다. 해변을 보니 큼지막한 바다표범이 모래에 누워 사진 세례를 받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펭귄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펭귄의 천적이라고 하는 바다표범이 옆에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주위에 서성거려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불러서일까, 펭귄의 천적이라는 바다표범은 펭귄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배가 불러도 끝없는 욕심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과 비교된다.
 
사람도 자족할 수 있다면! 고통 받는 이웃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