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Prism이 지난 11월 22일 당선 소식을 알렸다. 연세춘추에 따르면, 단일 선본으로 입후보한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Prism은 “찬성률 67.73%, 반대율 18.32%, 기권 13.95%”을 얻었으며, “개표 가능 투표율인 50%를 넘지 못해 세 차례 연장된 이번 선거는 최종 투표율 51.49%를 기록하며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총여학생회 선거운동 기간 중 Prism이 내세웠던 주요공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출처 : 연세대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Prism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1. 소통 및 신뢰 & 문화 정책
▲ 총여학생회 홈페이지 개설 ▲ 집행부 체계 정리▲ 총여학생회 집행부 회의록 업로드 의무화 ▲ 총여학생회 회칙 제정▲ 월 2회 무비 나잇 ▲ 학내 여성 스포츠 활성화 ▲ 학내 여성주의 소모임 및 성평등 위원회 지원 ▲ 성평등 자치규약 개정
 
2. 일상&교육권 강화 정책
▲ ‘불법촬영 프리존’ 지도 구축 ▲ ‘내 몸에 맞는 월경용품 찾기’ 프로젝트 진행 ▲ 인권센터 학생 운영위원 참여 의무화 ▲ 성폭력 및 성매수 피해자 법률자문 연계 ▲ 질병 결석계 인정 기준 획일화 요구 ▲ 강의실 내 혐오 및 폭력 발언 아카이브 구축 ▲ 폭력 예방교육, 성인지 교육 내용 구축 참여 ▲ 베리어 프리 강의 만들기
 
3. 연대 & 국제캠퍼스 정책
▲ 소수자 단체와의 연석회의 제도화 ▲ 성폭력 생존자 연대모임 진행 ▲ 남자 화장실 칸막이 설치 요구 ▲ 학내 건물 엘리베이터 추가 설치 요구 ▲ 속기 서비스 안정화 요구 ▲ 비건(완전 채식) 학식 도입 ▲ 국제캠퍼스 불법촬영 탐지 및 탐지기 대여 사업 실시 ▲ 회장단과의 Prism Time in 국제캠퍼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총여학생회(조선일보)”,”서울소재 대학 총여 모두 사라졌다(허핑턴포스트)”, “동국대도 총여 폐지….서울 대학가에서 ‘0곳’ 됐다(경향신문)”, “대학가 마지막 총여도 사라지나…..(아시아경제)”와 같은, 제대로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은 뉴스가 쏟아지던 요즘, 연세대 제30대 총여학생회 당선공고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지금껏 총여가 ‘모두’ 사라진 적은 없으며, 서울권 대학가에서 단 한번도 총여가 0곳이었던 적도 없다. 최근에 폐지소식을 알린 동국대 총여는 이 시대 ‘마지막’ 총여가 아니다. 총여학생회는 단 한 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적이 없다.
 
사실 총여학생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흐름은 2018년에 ‘갑자기’ 시작된 현상이라기보단, 2000년대 이후부터 이미 진행 중이던 문제다. 실제로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2016년에 ‘총여 전수 조사’를 했을 때 이미 “2013년도부터 2016년도까지 최근 4년 사이에 (총여가) 폐지된 경우가 전체의 2/3인 12개교에 달했다”는 조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관련 기사 : 그 많던 총여학생회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올 한해 각 대학에서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는 총여에 대한 반감은 학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과 위협(온라인상에서의 지속적인 괴롭힘, 직접행동을 통한 자치활동 방해 및 물리적 위협 등)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보다 노골적인 형태의 ‘백래시(Backlash)’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연세대학교의 경우 5월달부터 ‘총여 퇴진과 재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으며 ‘총여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학우들이 세력화를 위한 각종 집합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난 6개월 동안 연세대학교 캠퍼스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연세대 총여 재개편 논란, 그 이후의 타임라인

5월 19일: 연세대학교 제29대 총여학생회 모음(이하 ‘모음’)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연세대학교 제2회 인권축제 ‘다시만난세계’에서 기획한 공개강연의 주제(대학 내 인권활동 그리고 백래시’와 연사 은하선 작가에 관한 홍보글이 게시됨. 이후, 학내에서 은하선 작가의 강연을 반대하는 학우들의 각종 집합행동이 벌어짐.

5월 24일: “여성주의는 취소될 수 없다”는 총여학생회의 공식입장에 따라, 은하선 작가의 강연은 예정대로 개최되었으나 강연 당일 일부 학우들에 의한 방해 움직임이 있었음

5월 25일: ‘모음’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제2회 인권축제 강연 행사에 대한 입장문’이 게시됨(입장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음 : 연사 선정과 관련한 총여의 판단 근거를 밝히고, 총여의 소통과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을 사과하고, 인권축제에 참가했던 총여 외 다른 학내 구성원들에게 사과할 것).

5월 25일: “제28대 총여학생회 ‘모음’ 퇴진 및 총여학생회 재개편 추진단(이하 추진단)”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짐. 온라인 서명링크 및 성명서 전문 공개.

5월 26일: “우리에게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이하 우총필)”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만들어짐.

5월 28~6월 2일: 제15차 정기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가 열림. 총4일, 45시간에 걸쳐 진행됨. 당시 중운위에 발제자로 참가했던 추진단의 ‘모음 퇴진과 총여 재개편’ 요구는 중운위원들에 의해 ‘총여 퇴진 여부’와 ‘총여 재개편 여부’로 분리되어 후자에 대해서 가결이 됨. 이 ‘재개편’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음(관련 기사 : 연세춘추, 표 끝에 선 총여학생회).

6월 4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제29대 총여학생회 모음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우리는 모음을 반대합니다-이하 ‘우모반’)’이 만들어짐. ‘서명운동’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모음을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서명링크가 게시됨.
 
6월 13~15일: ‘총여 재개편 학생총투표’가 실시됨. 총투표 당시 우총필에서는 “#학생총투표보이콧 #여학생의 권리입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총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 총투표를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함.

재적 학부생 3만 5896명 중 남학생 9268명, 여학생 5017명 등 총 1만 4285명(55.16%)이 투표에 참여. 남학생은 93%(8652명), 여학생은 62%(3116명)이 찬성. 반대하는 여학생들은 대부분 기권함(참고: 허핑턴 포스트, 연세대 학생 82%가 총여학생회를 재개편하자는 데 표를 던졌다).

6월 18일: ‘모음’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연세 학우 분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됨.

6월 26일: 페이스북 페이지 ‘총여학생회폐지위원회(이하 ‘총폐위’)’가 만들어짐.

7월 10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관련 간담회’가 열림.

7월 19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 공개모집이 시작됨. 대상은 총여학생회원(학적부상 여학생) 전체이며 기간은 7월 19일~25일.

7월 21일: ‘모음’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총여학생회장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입장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됨.

8월 7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1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8월 14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2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9월 3일: 제29대 총여학생회장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

9월 13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3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9월 20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4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9월 27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5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9월 30일: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의 제6차 정기회의가 진행됨

10월 29일: 제54대 총학생회 선거 및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공고 시작.
선거일정 – 11월 7일~19일: 유세기간, 11월 20일~22일 투표기간

11월 24일: 제30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 Prism 당선공고
 
연세대 제30대 총여 선거운동 기간 중 일어났던 일들
 
앞서 타임라인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연세대 총여 재개편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도대체 ‘재개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나 개념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연 이 요구가 폐지, 사퇴와 구분되는 지점은 무엇일지, 방향성조차 제시하지 않은 재개편 요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와 관련한 고민들은 총여와 총여 지지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총투표 이후 시작된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는 제30대 총여학생회 당선 선본인 Prism이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복잡한 다수의 사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음에도 차기 총여선거운동과 투표가 무사히 시작되고 끝났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또 한번 총여를 향한 비방과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고 전해진다.

현재 연세대에 재학 중인 한 제보자에 따르면, 익명의 사용자가 ‘총여학생회 폐지 서명안’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게시글을 통해 총여 폐지서명운동 링크를 공유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또한, 페이스북 페이지 “총여학생회 폐지위원회(이하 ‘총폐위’)”에서도 “총여학생회 폐지 및 후속 기구 신설에 대한 내용을 담은 학생총투표 발의”를 위한 서명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세대 학교 캠퍼스 곳곳에 총여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표하는 내용의 찌라시와 현수막이 게시되어 학내 페미니스트를 향한 백래시가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총여가 필요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생자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총여학생회라고 해서 늘 완벽하고 실수 없이 모두를 100% 만족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총여학생회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총여학생회도 다른 형태의 학내 자치 조직/단체/모임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과 관련된 요구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에 대한 요구가 항상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성을 전제할 때 의미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총여 재개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개편과 관련된 최소한의 방향성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답변을 할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만일, 총여가 정말로 사라진다면 여학생들의 안전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권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야한다. 무엇보다 총여의 필요성 자체를 의심하는 비난과 ‘더 나은 총여’를 위한 비판을 구분하는 능력. 이런 능력 또한 공동체가 앞으로 함께 길러나가야 할 책임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사실, 총여학생회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바로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편견이 총여학생회가 급진정치의 맥락에서 ‘젠더’를 핵심의제로 다룬다고 할 때 (시스젠더-이성애자)남성들의 머릿속에서는 ‘젠더=여성’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성뿐만 아니라 남성성 역시 젠더연구와 페미니즘 정치의 가장 치열하고 예민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성은 젠더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옷을 입고 있는 방식과 걸음걸이, 말투와 목소리, 손짓과 제스처, 그리고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며 사용하는 사소한 단어까지. 당신에게 공기처럼 스며들어있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젠더화된 삶의 일부라고 말이다.

페미니즘은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드러내고 변화시킬 뿐이지 단 한 번도 타인의 삶에 죽음을 선고하고 파괴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페미니즘의 어떤 점이 두렵고 무서워서 아직도 제자리에 멈추어 있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