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에게 사주는 핑크색 머리띠가 왜 문제인 걸까?

※ 호주 성평등 기획취재 5편: 호주 학교들은 어린이들에게 ‘젠더 공교육’을 한다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호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과 성별 고정관념의 관계에 좀 더 주목했다. 그리고 ‘초기에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학교 교육과정에 ‘젠더 교육’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폭력예방교육이자 성평등교육인 ‘존중하는 관계 교육’을 만든 단체 ‘아워 워치’(Our Watch)의 디렉터 카라 글리슨으로부터 들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아래 옮긴다.

 

조카에게 사준 파란색 옷과 핑크색 머리띠도 문제일까?

– 성별 고정관념과 폭력은 어떤 관계가 있나?

= ”성별 고정관념은 아주 어려서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더 어린 나이에 성평등과 젠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조카에게 사주는 옷 색깔이 훗날 폭력과 관계 있다고 하면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옷 색깔은 사실 별 문제가 없다. 옷만의 문제라면, 또 그게 자기 선택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아이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전반적으로 ‘남자는 무조건’, ‘여자는 무조건’이라는 사고방식에 노출되면서 성별 고정관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행동에는 매우 많은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고, 폭력의 원인이 되는 왜곡된 남성상과 여성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대여섯살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가정폭력 사건들을 보면, 남성 가해자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의 입장에서 자신의 파트너와 아이들을 통제하려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폭력 예방 전문가들은 ‘남성은 항상 여성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거나, ‘강한 남성은 자기의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모든 걸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남성성에 대한 과도한 고정관념이 가족 사이에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릴 때 폭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분석한다.

글리슨은 호주에서 청년 남성의 자살률이 다른 성별이나 연령대에 비해 높은 점을 지적하며,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십대 남성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주목하는 것 역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자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 남자다운 것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힘든 점은 없는지, 스스로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어떤 게 있는지 주위의 어른들이 같이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 ”’아워 워치’는 가정폭력이 호주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5년 전, 정부 차원에서 ‘폭력 초기 예방’을 전담시키기 위해 만든 단체다. 우리는 초기 예방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해야한다고 봤고, 또 교육을 하려면 전국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만든 것이 ‘존중하는 관계 교육’(Respectful Relationships Education)이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인간 관계에서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가르치는 교육 과정이다.”

 

호주의 교육 학제는 13년 시스템이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프라이머리 스쿨(primary school)에서 취학 전 과정인 프렙(prep-primary) 1년과 1~6학년을 다닌다. 프라이머리 스쿨 졸업 후 중·고등학교 격인 세컨더리 스쿨(secondary school)에서 7~12학년을 다닌다.

‘아워 워치’의 ‘존중하는 관계 교육’은 만 5세에 시작하는 프렙 과정에서 만 17세인 12학년까지, 전 학년에서 시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빅토리아주에서는 이제 시행 5년차를 맞았다.

– 기존의 인성교육이나 성교육과 차이점이 뭔가?

= ”커리큘럼은 학생들의 감정적 능력, 사회적 능력, 신체의 건강을 발전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초등학교 취학 전 과정부터 고등학교 12학년까지 전 학년에 각각 나이대에 맞는 과정이 있다. 이 전국 공통 커리큘럼과 교사용 자료집은 우리가 교육부, 교사 단체, 교과 개발 관련 기관들과 함께 2년간 개발해 만들었다.

주정부들이 우리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그 주의 공공 부처, 학교, 시민단체, 복지기관들이 우리와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제공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지역사회 전체가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운영해 간다는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학교 전체를 교육하기 위해, 외부 전문 강사를 파견하는 대신, 전문 강사가 각 학교의 교사들을 교육해 그들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택했다. 전문 강사가 훌륭한 인권 강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떠난 후 인권이나 성평등 감수성이 부족한 일반 교사들이 다시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을 포함해 모든 교사, 모든 교직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성평등 교육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또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가 필요할 때 항상 누군가가 있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 ’폭력을 저지르지도 않은 청소년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거나, 만 5세의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성이나 폭력에 관한 교육을 한다는 데 반대한 이들은 없었나?

= ”확실히 초등학교는 그냥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허브 같은 곳이고,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려면 시민들인 부모들의 인식과 참여, 협조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2015년에는 피해자를 탓하는 언론 보도가 크게 줄어드는 등, 가정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가 이미 이전에 비해 크게 높아진 상황이었다. 부모들의 공감대도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젠더 교육과 폭력 예방 교육을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폭력이나 성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긍정적이고 동등하고 존중이 있는 인간 관계를 맺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악마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따로 있지 않다’, ‘(편견에 갇히기보다)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사람이 되자’고 가르칠 뿐이다.”

’존중하는 관계 교육’ 참고자료집 중에서. “강간, 살인, 신체적 학대, 감정적 학대”가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 윗 부분이라면, “해로운 성별 고정관념, 여성에 대한 비하, 통제, 협박”이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 원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

‘존중하는 관계 교육’ 자료집에서 학생들의 능력을 키우자고 다루는 주제는 8가지다. 학생들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가정과 사회에서 각각 정해져있다’는 생각으로 생길 수 있는 나쁜 점을 이야기해보고, 비판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역할을 해체한다는 것은 곧 ‘남자답지 않은 남자’, ‘여자답지 않은 여자’와 같은 전통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는 다름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교육으로 이어지고, 곧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 교육의 핵심 내용이다.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스스로 배우고 익힌 것들을 기반으로, 문제 상황을 발견했을 때 직접 행동하도록 가르친다.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개입하거나, 성별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행동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8가지 수업 주제 :

  •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감정 해석’
  • 자신과 타인의 장점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우는 ‘개인적 강점’
  • 힘든 일이 있을 때 여러가지 대안을 궁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긍정 대처법’
  •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문제 해결’
  • 힘든 일이 있을 때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스트레스 관리’
  •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주위에 알리는 ‘도움 구하기’
  • 인권, 젠더,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공부하고 다름을 존중할 줄 알게 되는 ‘젠더와 정체성’
  •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폭력 사건을 목격했을 때 위의 능력들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젠더 관계’

 

교사가 아니어도, 부모가 아니어도 ‘교육자’다

– 아이들을 성 편견이 없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젊은 부모나 교사들이 많다. 하지만 보수적인 다른 어른들이나 미디어의 영향을 걱정한다. 학교에서의 젠더 교육이 부족한 한국에서 부모나 교사들이 참고할 만한 조언이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별 고정관념을 비롯해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도전하라고 계속해서 말해줘야 한다. 아이들과 성평등에 대한 대화를 하고,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라. 부모라면 가정에서 아이에게 보이는 부부 관계부터 신경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부모나 교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왜 그렇게 늦게 나다녀?’, ‘왜 그런 옷을 입고 나다녀?’, ‘왜 그 자리를 당장 떠나지 않은 거야?’라며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비난하는 말들을 하지 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자. 아이들과 여성 선수들의 운동 경기를 보러 다니고,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옷을 사줄 때는 디자인과 색깔을 한 번 더 생각하자. 자신의 애인, 직장 동료들, 커피를 살 때 대화하게 되는 점원을 대할 때는 항상 그들을 존중하자. 모두에게 역할이 있다.”

‘존중하는 관계 교육’은 2022년에 마무리 지을 호주 정부의 가정폭력 예방 12년 액션 플랜과 맥을 같이 한다. ‘타인을 존중하고 성 고정관념을 깨자’는 기존 여성단체들의 캠페인에, 성평등과 폭력 예방,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담아 발전시켰다.

2015년 빅토리아주와 퀸즐랜드주에서 먼저 초등학교 18곳, 고등학교 19곳을 선정해 시범 운영했고,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인 2016년 빅토리아 교육부가 시범 운영 학교 평가자료를 바탕으로 공식적으로 ‘존중하는 관계 교육’을 런칭했다.

 

*인터뷰 답변은 명료한 전달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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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