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범한 절에, 보물이 10점이나 있다니

 
가지산 보림사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절집이다. 80∼90년대에 많이 찾았다. 절집 앞으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이 학생들의 수련회 장소였다. 절집 앞으로 장흥댐이 들어서면서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은 비켜났다.
 
보림사는 평지에 들어선 가람이다. 건물의 배치가 색다르고, 웅장하지 않다. 신라 말 헌안왕(860년경) 때 원표대사가 터를 잡았다고 알려져 있다. 절집의 규모에 비해 귀한 유물이 많다. ‘보물창고’다. 한자로 보배 보(寶), 수풀 림(林)을 쓴다.
 
보림사에는 국보와 보물 10점 있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보조선사 창성탑과 창성탑비, 목조 사천왕상, 동부도와 서부도는 보물로 지정됐다. 월인석보, 금강반야바라밀경, 자비도량참법 등 전적류도 보물이다. 석불입상 등 13점은 전라남도 지정 유형문화재다.
  

   

 
그 가운데 사천왕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천왕은 수미산의 동서남북, 사천국을 다스리는 왕들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이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1515년에 조각됐다. 우리나라 목조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조각수법이나 모든 면에서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보물이다.
 
사천왕상을 보고 들어가면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에 두 기의 탑과 석등이 있다.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경문왕(870년) 때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보다.
  

   

 
대적광전의 불상도 진귀하다.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신라 헌안왕(858년) 때 김수종의 시주로, 당시 쇠 2500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국보다. 한국전쟁 때도 화를 면한 철불이다.
 
대웅보전 뒤편에 있는 보조선사 창성탑과 창성탑비도 보물이다. 보조선사는 신라 때 보림사의 주지 지선스님을 일컫는다. 스님이 입적하고 4년 뒤에 헌강왕이 ‘보조선사’라는 시호를 내려줬다. 왕이 탑의 이름도 직접 내려줬다. 한자로 드러날 창(彰), 성인 성(聖)을 쓴다.
  

   

 
절집을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 숲도 좋다. 나무의 수령이 70년에서 400년까지 된 나무들이다.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다. 나무 아래에는 야생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림청과 생명의숲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한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인정받은 숲이다.
 
아름드리 푸른 비자나무의 맑은 기운이 기분까지 좋게 해준다. 수십 년, 수백 년을 우리와 함께 한 나무라는 사실에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기운을 느껴본다. 지친 심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비자나무 숲을 싸목싸목 걸으면 더 좋다. 숲길도 걷기 좋게 단장돼 있다. 길 이름이 ‘청태전 티로드’로 붙여져 있다. 청태전은 떡차의 일종이다.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발효차의 효시다.
 
찻잎을 따서 햇볕에 말리고 찧어서 만든다. 1년여의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이끼처럼 짙푸르게 변한다고 ‘청태전’이다. 엽전 모양의 덩이처럼 생겼다고 ‘떡차’, ‘전차’로도 불린다. 장흥을 비롯한 전남 남해안이 주산지이다.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비자열매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껍질을 벗은 비자 열매는 아몬드처럼 생겼다. 조금 쓰면서도 떫은, 쌉싸래한 맛을 지니고 있다. 이 열매는 옛날 회충, 촌충 등 기생충을 없애는 약으로 쓰였다. 지금은 기름으로 많이 짜고, 비자식혜도 만들어 먹는다. 나무는 재질이 부드럽고 연하면서 습기에 강해 가구재로도 쓰인다.
 
비자나무도 독특하게 생겼다. 나무껍질이 흑갈색으로 세로로 길게 갈라진다. 잎이 납작하면서 약간 두껍고, 끝은 침처럼 날카롭게 생겼다. 잎의 끝 부분을 손바닥에 대보면 딱딱하고 찌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