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의 삶과 병과 죽음, 이제는 말하겠습니다

 

 
이용마 기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추모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쓴 글을 지워야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그를 생각하면 오백 장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이유를 방금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2016년 가을, 그의 병마는 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용마 기자가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저는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저에게도 이용마 기자를 인터뷰 해달라는 언론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용마 기자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 가지만 단단히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본인의 병을 화젯거리로 삼지 말아 달라고, 오직 단 한 가지, MBC 정상화, 공영방송 독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용마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겠구나 싶을 때만 아주 조금 이야기해달라고요.

제 글이 자꾸만 쓰다 지워진 것은 제가 그의 삶과 병마와 죽음을 함부로 소비하는 것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을 버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담아 그를 추억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이에게 손 내미는 사람

저와 이용마 기자는 MBC 해고자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처장으로 이런저런 일을 함께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용마 기자는 민언련 사무처의 와일드카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뭔가 부탁할 때, 그는 단 한 번도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해주면 걱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2013년 가을부터 그는 민언련 정책위원으로 민언련의 공영방송 관련된 여러 논의를 함께해주었습니다. 언론학교며 글쓰기 강좌며 그를 강사로 모시면 늘 인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제대로 된 언론인을 키워내기 위해 민언련이 야심차게 마련했던 ‘참언론 아카데미의’의 지도교수를 맡아서 학생들의 담임 역할을 충실히 해줬습니다.

말이 지도교수이지, 수강생들의 글을 첨삭하고, 그들이 참언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봐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역할에 비해 민언련이 드리는 비용은 매우 적었지요. 그래도 이용마 기자는 그 일을 참 성실하게 해줬습니다.

2016총선보도감시연대 당시에는 저와 함께 팟캐스트를 했습니다. 명색은 총선보도감시연대의 대변인이었네요.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대변인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우리는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우리가 출연할 팟캐스트를 스스로 섭외해야 했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김종배의 팟캐스트를, 저는 민동기의 팟캐스트를 ‘뚫었고’,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보따리장수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서 이용마 기자에게 우리가 이렇게 애쓸 필요가 있겠냐고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강의하랴, 쌍둥이 아들 돌보랴 이래저래 바쁜 사람을 마냥 끌고 다니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지레 징징거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저에게 그런 생각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번듯한 시사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몇 십만 명이 듣는 팟캐스트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고, 이렇게 계속 뭔가를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용마 기자를 알차게 ‘애용’했습니다. 그가 특별히 민언련이라는 단체에만 애정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그냥 우리가 애쓰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애쓰는 우리가 내민 손을 잡아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고자로 지내는 동안만이라도 여건이 되는 만큼 민언련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해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언론운동단체만 좋아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민언련 활동보다 참여연대의 성실한 회원으로서 더 오래, 더 많이 함께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쌍둥이 아이들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 만큼, 그 자신이 그런 삶을 실천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해고자가 되지 않았더라도,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었을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정의로운 기자이자 열렬한 촛불시민이자 소중한 동지였던 이용마 기자를 추모합니다. 
 

 
한 번은 제가 그만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병원에 있을 때였는데, 제가 너무 지쳐서 찾아가 철없이 하소연을 늘어놓았죠. 그때 그는 좋은 친구 역할을 해줬습니다. 꼬치꼬치 물으며 너의 전략이나 처신이 문제라고 충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 편을 들어주며 공감해줬고, 그렇지만 다시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피곤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지쳤다고 징징거리자 그가 ‘버럭’ 짜증을 냈습니다.

“나는 뭐 김재철이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하고 파업했겠어?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으니까 시작한 거지. 상황이 아니면 싸워야지 왜 자꾸 포기하려고 해요?”

이용마 기자의 그 ‘버럭’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해졌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이용마 기자가 포기하지 않는 시간만큼이라도 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의 손으로 뽑자는 그의 꿈

그가 저를 늘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저를 많이 속상하게 한 적도 있는데요. 제가 KBS‧MBC 정상화시민행동, 이른바 ‘돌마고'(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를 하느라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을 때였는데요. 이용마 기자는 제발 더 길게 보고 방송법 개정을 통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문제에 집중해달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바빠 죽겠는데, 지금 뭐하는 거냐고 툭 내미는 말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아주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입법을 통해서 국민의 손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고, 그 힘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을 만나든, 서울시장을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민언련은 이용마 기자의 생각이 담긴 이른바 ‘이용마법’, 즉 국민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고 이사진 구성에서 정치권 입김을 배제하는 방송법 개정안 초안을 준비했습니다. 이를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적극적으로 입안하여 이른바 ‘이재정 안’으로 상정되었지요.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KBS‧MBC를 장악했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면서 과거엔 격렬히 거부했던 2016년 ‘박홍근 안'(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통과시키자고 안달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도입니다. 정치권은 여전히 공영방송을 시민 손에 돌려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그를 보내며,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저는 이용마 기자가 주장했던 그 작지만 큰 소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 MBC가 본연의 책무로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이 될 수 있도록 저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거라고요.

이용마 기자를 추모하시는 많은 분들,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분들도 그의 뜻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용마는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의 손으로 뽑자고 했습니다. 공영방송이 정치권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영방송의 종사자들이 정치권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고 그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일을 우리가 해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