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백팩은 등 뒤로 메는 가방이 아니다

두근두근 브라질 도착

세계여행 8개월, 234일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아메리카 일주의 마지막 나라, 브라질에 들어섰다. 무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남미 최대의 땅, 브라질. 이 땅의 이름 역시 식민지의 시간이 만들어낸 이름이다. 브라질은 당시 유럽인들이 좋아했던 붉은색 염료를 채취하는 나무의 이름이다. 유럽으로 은을 빼가던 땅은 아르헨티나, 염료를 가져가던 땅은 브라질이 되었다.

무더운 날씨가 여행의 의욕을 떨어뜨려, 지도에서 본 거대한 땅덩어리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6300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아마존강과 밀림 지역, 해변 휴양지들을 포기하고 곧바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동했다. 이과수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의 거리는 1600킬로미터, 버스로 꼬박 스물여덟 시간이 걸렸다. 오후 두 시 반에 출발한 완행버스는 수많은 도시를 경유해 다음날 오후 여섯 시 반이 되어서야 리우에 도착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라 불리는 곳. 하지만 아름답다는 명성 못지않게 악명 또한 높다. 강도와 소매치기로 유명한 남미에서도 그 악명이 가장 자자한 곳이 바로 리우데자네이루다. 굳이 위험을 무릎쓰고 싶지 않아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으나, 리우는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가 남미에서 가장 저렴한 곳이다. 버스로는 대서양을 건널 수 없다. 주머니 가벼운 세계일주 여행자라면 피하기 어려운 장소다.

인터넷 여행커뮤니티 ‘남미사랑’ 에서 운영하는 카카오톡 ‘남미방’에는 종종 리우데자네이루의 소매치기 동영상이 게시됐다. 브라질이 가까워지면서 상황 파악을 위해 열어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날쌘 소매치기들은 밝은 대낮 대로에서 행인들의 가방과 목걸이 따위를 완력으로 낚아채갔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인터넷의 영상은 현실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놀란 가슴을 다독였다.
 

“리우에서 강도를 만나면 저항하지 말고 무조건 다 내어주세요. 카메라에 담긴 추억도 너무 중요하지만, 목숨은 하나 뿐이니까요.”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대낮에 네 명이 같이 다녔는데도 다 털리고 구타까지 당했습니다. 되도록 리우에는 가지 마세요.”

실제로 소매치기와 강도를 당한 사람들이 올리는 글도 빈번했고, 어떤 경고의 글들은 섬뜩했다. 강도를 만나면 내어줄 용도로 작은 금액 지폐를 두둑하게 넣은 지갑을 준비하라는 정보를 따라, 큰 금액이 든 지갑은 깊숙이 넣어두고 가벼운 지갑을 주로 사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스텔에서 만난 브라질 여행자 세르주 씨에게 이러한 브라질 악명의 실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니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 나처럼 이렇게 후줄근한 셔츠에 반바지 입고 다니면 괜찮아. 큰 길으로 직진만 하고 골목으로 안 들어가면 괜찮아.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안 꺼내면 괜찮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브라질은 나라 전체가 치안이 안 좋아. 경찰이 별로 힘이 없고 도둑이 많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아주 친절해. 누구나 다 너를 도와줄 거야.”

옷이야 나도 세르주 씨 못지 않게 후줄근하지만, 여행자가 길을 찾다 보면 골목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사진을 찍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은가. 위험하다는 건지 안 위험하다는 건지, 친절한 세르주씨의 설명도 나를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파타고니아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안영우씨의 인스타그램에서 힘이 되고 공감 가는 문장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걱정과 불안이 앞설 때, 그걸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생각을 멈추고, 일단 가고 보자!'”

우연히 여행의 발걸음이 겹쳐서 페루 69호수와 칠레 토레스델파이네를 함께 산행한 여행자 김경진씨의 말도 떠오른다.

“안 하고 후회하지 말고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하고 후회도 안 하면 더 좋겠네요.”

머나먼 길 위에서 매번 새로운 결정을 해야하고, 자주 걱정과 불안을 겪어야 하는 비슷한 처지의 세계 여행자들이기에,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들은 때로 중요한 정보가 되고, 때로는 소중한 힘도 된다. 그리고 여행은, 많든 적든 사람을 변화시킨다. 두려움과 걱정은 접어 두고, 나만의 리우데자네이루에 힘껏 부딪혀 보자고 마음먹었다.
 

 

코파카바나에서 버터플라이

그 어느 장소보다 긴장한 채 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서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도시 변두리 공터 곳곳에는 카니발에 사용된 뒤 방치된, 화려한 빛깔의 장식물들이 묵묵히 다음 카니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미의 어떤 대도시 보다 노숙인이 많았고, 일요일이라 상점들이 문을 닫아 더욱 쓸쓸해 보였다. 공원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은 홈리스들이 나뭇가지 몇 개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올려 요리를 했다. 복대, 지갑, 카메라, 휴대폰이 제자리에 붙어있는지 계속 신경쓰면서 숙소를 향해 걸었다.

“꼭 관광지 코파카바나나 이파네마에 숙소를 잡으세요. 다운타운이나 빈민촌 파벨라에 있는 숙소는 낮에도 위험합니다.”

경고를 따르고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저가 숙소는 모두 다운타운과 파벨라에 자리해 있었다. 파벨라보다는 안전할 것 같은 다운타운에서 사흘을 머문 뒤 숙소 가격이 갑자기 올라서, 어쩔 수 없이 파벨라로 이동해 이레를 더 머물렀다.

35도를 웃도는 여름이라 에어컨이 있는 숙소를 택했지만 전기세가 비싼지 에어컨은 밤중에만 가동되었다.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서 되도록 에어컨을 줄여야한다는 걸 알지만, 당장 땀이 줄줄 흐르고 하루에도 모기에게 수십 방을 물리니 시원한 기계의 힘이 절실했다. 앎과 실천의 부조화.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행동의 연속이다.
   

 
리우에 대한 경고는 거리와 빈민촌에서 끝나지 않고 숙소에까지 이어진다. 해변에서 수영을 하려고 귀중품을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자물쇠가 뜯겼다는 제보는 흔했다.

보관함을 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수영을 하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틀째 숙소에 박혀 글만 쓰고 있는 나에게 브라질 여행자 디에고씨가 코파카바나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현지인과 함께라면 안전하고 짐 보관도 가능할 것 같아서 선뜻 따라나섰다.

마침내 마주한 코파카바나 해변은 넓고 아름다웠으나, 상상만큼 푸르고 싱그러운 바다는 아니었다. 남한의 미항 통영이 고향이라, 웬만한 바닷가는 그러려니 하고 만다. 대도시의 해변은 으레 부산 해운대와 비슷하다. 좋은 위치에는 대기업의 호텔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에는 비싼 식당과 카페들.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도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대서양에서의 첫 수영. 종종 큰 파도가 덮치면 짠물도 마구마구 마셔가며 어푸어푸 아이처럼 신나게 놀았다. 주변 현지인들도 일행이 모두 물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휴대폰과 지갑을 도둑맞지 않으려고 한 명씩 돌아가며 자리를 지켰다.

리우에서 백팩은 등 뒤로 메는 백팩이 아니다. 여행자도 현지인도 모두들 백팩을 앞쪽으로 메고 다닌다. 조심 조심, 골목에서도 해변에서도 도둑에 대한 주의는 리우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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