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베토벤의 이미지는 조작된 것

 
1827년 3월 29일 목요일 오후,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밀려드는 군중 때문에 단 500m를 움직이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8명의 궁정 오페라 가수들이 관을 메고 8명의 카펠마이스터가 관 위의 리본을 붙들었다.

프란츠 슈베르트, 카를 체르니, 프란츠 그릴파르처 외 40여 명의 친구와 시인, 배우 음악가 동료들이 왼손에는 흰색 백합을 오른손에는 횃불을 들고 뒤를 따랐고 ‘네 대의 트롬본을 위한 세 개의 에클레아’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베토벤이 1812년 린츠에서 위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곡이며, 이날은 베토벤의 장례가 치러진 날이었다. 극작가이자 시인인 그릴파르처는 추도사에 이렇게 썼다.
 

‘베토벤은 원래부터 전 시대를 통해 가장 위대했으며 헨델과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의 불멸의 명성을 이어받아 이를 한층 확장한 자’였다. (중략) 이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라. 그를 묻는 자리에 우리가 있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눈물을 흘렸노라.

 
조작된 베토벤의 이미지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의 이미지는 조작되었다. 그 중심에 안톤 펠릭스 쉰들러가 있다. 쉰들러는 베토벤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의 비서였다. 베토벤은 그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무급으로 그의 곁에 머물기를 원하는 쉰들러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요한 일 처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으며, 그가 맡은 일이란 허드렛일뿐이었다. 쉰들러는 그렇게라도 거장의 옆에서 후광을 얻길 원했다.

베토벤이 죽기 몇 주 전, 베토벤의 오랜 친구인 슈테판 폰 브로이닝과 함께 베토벤을 간호하면서 그는 베토벤의 중요한 문서들을 접할 수 있었다. 쉰들러의 주장에 따르면, 베토벤은 모든 자료를 그와 브로이닝에게 위임했다고 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토벤이 죽고 몇 주 후에 브로이닝마저 눈을 감자 쉰들러는 그 자료들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가 있었다.
 
베토벤은 말년에 귀가 들리지 않아 수첩을 이용해 의사소통했는데 쉰들러가 소지한 베토벤의 소통 노트는 총 400여 권이었다. 그는 베토벤의 자서전을 출판하면서 그가 세워놓은 베토벤의 이미지에 맞는 부분들만 짜깁기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은 자료들은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책이 출판되고 이를 읽은 베토벤과 가까운 많은 사람이 반발하자, 그 증거로 대화 수첩에서 뽑아낸 문구로 구성한 부분을 첨부했다. 마치 그럴싸하게.
 
그리고 그중 136권을 베를린 왕립도서관에 비싸게 팔아먹고 260여 권은 태워버렸다. 1845년에는 베토벤 수집품 대부분을 프로이센 왕에게 팔아 그 대가로 거액의 헌금과 종신연금을 받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베토벤과의 친밀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베토벤과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며 깊은 대화를 주고받은 것처럼 내용을 조작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 놓은 영웅이 된 천재의 이미지를 좋아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자신이 그토록 흠모하던 베토벤의 순수한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좋은(?) 의도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결국 베토벤 삶의 진실과 멀어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베토벤이 쏟아놓은 무수한 명언들과 독특한 행동 중에서 어떤 것이 조작인지,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논란 속에 있는 정보도 많다.
 
베토벤의 스승,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

베토벤은 18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루트비히 판 베토벤(손자 베토벤과 동명이인)과 아버지 장 판 베토벤은 둘 다 성악 가수였고 대대로 궁정악장을 지낸 음악가 집안이다.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 마그달레나 케베리히’는 열여섯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지만 얼마 후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었다. 장은 그런 마리아와 사랑에 빠졌다.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이 결혼을 극심히 반대했으나 둘은 결혼했고 그 사이 베토벤이 태어났다. 베토벤은 7남매가 있었으나 모두 사망하고 베토벤을 포함한 3형제만 살아남았다.
 
베토벤의 어머니는 성정이 너그럽고 인자하였고,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어린 베토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 한 비정한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모차르트를 데리고 투어를 다니며 돈을 번 것을 떠올리며 자신도 베토벤을 이용해 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모차르트는 베토벤보다 14살 연상이다). 그는 어린 베토벤을 방에 가두고 종일 피아노만 치도록 했다. 그리고 베토벤이 8살이 되었을 때 대중 앞에서 그를 6살이라 속이고 연주하게 했다.
 

“1778년 3월 26일에는 슈테르넨가세의 음악 아카데미 홀에서 선제후 궁정의 테너 가수 베토벤이 두 명의 제자를 선보입니다. 아베르동 호팔티스틴양과 자신의 여섯 살배기 아들입니다. 이들은 여러 곡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고 피아노협주곡과 트리오를 연주할 것입니다. (중략) 예매하지 않은 분들은 1굴덴을 내야 하고 입장권은 앞에서 이야기한 아카데미 홀이나 뮬렌슈타인의 클라렌 씨에게서 받을 수 있습니다.” – 1778년 3월 26일 음악회를 알리는 광고

 
베토벤의 연주는 모차르트 연주만큼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다양한 연주 경험은 베토벤을 성장시켰다. 그는 인근 교회의 여러 오르가니스트에게 다양한 기법을 배웠다. 또한, 어머니 사촌인 프란츠 로반티니에게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는데, 로반티니는 본 궁정악단의 단원이며 명망 있는 음악가로 베토벤과 함께 살며 그를 지도했다.
 
베토벤은 이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여러 연주자의 ‘잼 세션’에 참가해 예술적 상상력을 한껏 키울 수 있었는데, 이는 안 그래도 뛰어난 그의 즉흥연주 실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게 했다. 이런 베토벤에게 스승이라 칭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바로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이다. 네페를 통해 베토벤이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좋은 음악이란 극단적 개인의 무한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네페는 베토벤에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철저하게 교육했으며 1783년 ‘음악잡지’에는 베토벤의 연주 기사가 실렸다.
 

“앞서 언급한 열한 살배기 아들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앞날이 촉망되는 인재이다. 그는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수 있고 초견 실력도 뛰어나다. 베토벤은 네페에게서 배운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완전히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 (중략)이 어린 천재는 이제 연주 여행을 위한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가 처음처럼 계속 성장해 나간다면 틀림없이 제2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될 것이다.”

 
어린 천재라 불린 베토벤은 10세까지 겨우 초등교육을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기에 산수나 쓰기 능력은 현저히 낮았다. 덧셈과 뺄셈은 가능하지만, 곱셈부터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활본능은 누구보다도 강해 셈은 빨랐다.
 
베토벤은 열 살 때부터 네페의 보조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례에 따라 무급이었지만 1784년부터는 정식으로 제2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어 150굴덴의 연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첫 작품을 출판하는데 <드레슬러 행진곡에 의한 아홉 개의 변주곡>과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 ‘선제후’>다.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네페의 권유에 따라 제목을 선제후(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로 정했으며 선제후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은 점점 네페의 협소하고 권위적인 방식에 불만을 느꼈고, 네페는 베토벤의 고집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베토벤은 새로 쓴 작품에 대한 스승의 비판이 싫었다. 그러다 보니 한때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약 10년이 지나서야 베토벤은 네페에게 그간의 마음을 풀고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선생님이 내가 행하는 신성한 예술이 발전하도록 나에게 자주 건넸던 충고에 대해 감사히 생각합니다. 내가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선생님 덕분입니다.”
 
네페는 1787년과 1792년 베토벤이 본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인 빈으로 갈 수 있도록 선제후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1787년 처음 빈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곳에서 모차르트를 만났다. 17살의 베토벤과 31살의 모차르트가 한 세기 안에서 피아노를 앞에 두고 얼굴을 마주한 엄청난 순간이었다.

쉰들러에 의하면 첫 만남에서 모차르트는 베토벤에게 푸가의 주제를 주고 즉흥연주를 청했다. 그가 건넨 주제는 연주하기 매우 까다로운 것이었다. 베토벤의 연주를 들은 모차르트는 짧고 강렬하게 논평했다.
 
“베토벤은 머지않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참고 문헌]
베토벤(얀 카이에르스, 홍은정, 도서출판 길)
루트비히 판 베토벤( 메이너드 솔로몬, 김병화, 한길아트)
베토벤 평전(박홍규, 가산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