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일차, 드디어 천지를 만났습니다

“등산로 입구부터는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합니다. 일행이랑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소지품 잘 챙기시고요.”
 
백두산 등반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서쪽 등산로 입구까지는 버스로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했고, 그동안 가이드가 신신당부를 한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의 국경절 연휴가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 한결 여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일행들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찾을까 걱정스러워서 긴장되기도 했다.

중국은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올 때마다 중국어라는 큰 장벽에 부딪혀서 자유여행을 선택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이 지역 (연변 조선족 자치주)은 한글도 곳곳에 보이는 것을 보니, 다음에는 자유여행을 한 번 해볼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된다.
 
“짝꿍을 잘 챙겨주세요! 이산가족이 되면 안 됩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셔틀버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날씨가 변덕을 부릴까 걱정스러워, 우리도 부지런히 셔틀에 올랐다. 일행 중 어린이가 둘이나 있어서 그들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인데, 어느새 서로 친해진 친구들은 서로를 챙기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백두산은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서 등반만 가능하고 자유로운 경로를 따라 산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예전에 한 번 한시적으로 서쪽 등산로와 북쪽 등산로 사이의 트레킹을 허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자연 훼손이 심하여 곧바로 정책을 바꿨다고 한다.

아쉽긴 하지만 두 나라의 국경을 겸하고 있는 거대한 숲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인생에서 2천 미터가 넘는 곳에 올라가 본 것이 처음이에요! 괜찮을까요?”
“하하. 우리도 처음이야.”
 
두 번째 셔틀을 갈아타고 산길을 올라가면서 걱정이 밀려들었다. 가장 높이 올라가 본 산이라고는 한라산 백록담뿐이었고, 해발 2천 미터에 가까운 백록담을 처음 올랐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바로 지척에 백록담이 보이는 곳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들었고 가뜩이나 무거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산지대에서 산소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고 한다. 혹시 이번에는 더 높은 곳이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걱정스러웠는데, 다른 일행들도 처음이라며 웃고만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분명히 높은 자작나무가 울창한 삼림이었는데 금세 나지막한 구상나무만 드문드문 보이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급기야 천지까지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가까워지니 산에는 더 이상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2천 미터의 고원이 백두산이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울컥하다.

셔틀 밖의 공기는 등산로 입구와는 온기부터 달랐다. 서둘러 장갑을 찾아야 할 만큼 싸늘했고, 아이들은 목도리와 귀마개까지 중무장을 해야 했다. 아직 몸은 고산증이라고 할 만한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1400개의 계단 입구에 섰다. 심장은 첫사랑이라도 만나는 것처럼 가쁘게 뛰었는데, 내딛는 발자국은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계단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밟아가면, 우리 민족이 태어난 그곳을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얘들아, 무리하지는 말아. 힘들면 쉬어가도 괜찮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터벅터벅 발을 옮기는 중인데, 다람쥐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는 일행들끼리 아이들을 잘 챙기자며 다짐을 했는데, 오늘 보니 아이들이 우리를 챙겨가며 여행을 이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덕분에, 힘들어하며 올라가던 아버지들이 기운을 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느 산이든 정상은 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다 보니 그 계단의 끝이 보였고, 그 계단의 끝은 바로 우리 민족의 기원인 ‘백두산 천지’를 뜻한다. 없던 기운도 다시 솟아났고, 발걸음은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심장은 더운 피를 돌리고,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백두산을 둘러친 열여섯 개의 봉우리 위로 바쁘게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이 보였고, 하늘과 가깝게 닿아있는 바로 그곳에 하늘빛을 그대로 품고 있는 큰 물이 나타난다. 아, 그렇게나 와 보고 싶었던 천지가 눈앞에 있다. 야호!
 

  
“항상 머리에 흰 눈을이고 있어서 백두(白頭)인데, 사람들은 백번 올라야 두 번쯤 천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해요. 그만큼 천지를 만나기가 어려워요.”
 
가이드가 백두산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못 볼 수도 있다’라며 던진 경고 때문인지 계속 걱정을 했는데, 막상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물빛을 만나니 마음이 요동을 친다.

더 많은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천지 주변을 떠나지 못한 채 각자의 추억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때문인지 천지의 물은 계속 빛을 달리한다. 같은 자리에서도 계속 달라지는 풍경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르셨던 방향은 어느 쪽이에요?”
“장군봉은 어떤 거예요?”
“천지로 내려가 볼 수는 없어요?”
 

 
갑자기 질문이 쏟아진다. 다들 작년 이맘때쯤 남과 북의 지도자가 서 있었던 물가가 궁금한데, 이 방향에서는 장군봉도 북에서 올라오는 동쪽 등산로도 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너무 아쉬웠다. 설명을 듣자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는 열여섯 개의 봉우리가 모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도 거대해 보이는 천지는 그 일부만 보여주고 있다는 대답이다.

활화산의 정상에 자연 용출하는 물로도 이렇게나 거대한 연못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위대함에 다시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한다. 게다가, 푸른 물을 가득 채운 천지를 보고 있자니, 남과 북의 화해와 민족이 함께하는 미래를 기원할 수밖에 없다.
 
‘천지의 산신령님, 남과 북의 우리가 얼른 다시 만나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려갈 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다시 천지를 돌아본 후에야 간신히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원래 일정으로는 다음 날 북쪽 등산로를 따라 다시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등산로가 폐쇄되어 버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아쉽긴 하지만 한 번은 만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언젠가 남과 북의 관계가 나아진 그날, 우리 모두 동쪽의 등산로 정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날이 올 때까지, 천지의 산신령님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