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세계가 열렸다, 지금 걸어야 한다

 
고혹적이고 농염했던 매화와 팝콘이 터지듯 일제히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던 벚꽃들, 제 한 몸 감당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탐스러움을 자랑했던 겹벚꽃도 모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돌계단과 담벼락에는 어느새 형형색색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여기저기서 유채꽃 축제가 한창이다. 알록달록한 꽃의 현란함에 정신이 다 아찔할 정도다.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꽃의 현란함에서 벗어나 나무와 새와 손톱 만한 야생화들이 주인인 숲의 세계로 발을 디뎌보자.

광릉숲의 역사는 세조의 능 조성과 함께 시작된다. 광릉숲 일대는 세조가 즐겨 찾던 사냥터였으나 1468년 세조의 능이 조성되면서 사방 15리의 숲이 능 부속 숲으로 지정되고 왕릉 숲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림과 임업 연구를 위한 시험림과 학술보호림으로 지정, 보호됐고 6.25 이후에도 시험림으로 보존·관리됐다.

540년 동안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았던 덕분에 훼손되지 않은 광릉숲은 전 세계적으로 온대 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활엽수 극상림을 이루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숲이다.

광릉숲에는 944 분류군의 식물을 비롯해 장수하늘소와 같은 곤충류 3977 분류군, 이들 곤충을 먹고 사는 까막딱따구리, 오색딱다구리 등 조류종 180종, 버섯 696종, 양서 파충류와 어류 등 총 6100여 분류군의 생물이 산다.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 종이 서식하는 산림생물의 보고지역이다. 2010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면적 2만 4465ha, 서식종 5710종). 
 
광릉 숲길 
  

 
최근에 광릉숲과 일대의 전나무 숲에 ‘광릉 숲길’이라는 탐방로가 새롭게 조성됐다. 2018년 5월 경희대학교 정문에서 능내교까지의 총 1km의 구간이 1차로 완공됐고, 능내교에서 국립수목원 정문에 이르는 총 2km의 구간이 2018년 12월에 개장됐다. 

아직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 곳도 있으나 숲길 탐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로써 그동안 차를 타고 지나쳐야만 했던 총 3km에 달하는 전나무 숲길을 따라 봉선사–광릉-국립수목원의 일대의 숲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다.  

숲길은 차도와 맞닿아 있는 구간도 있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깊은 숲 속으로 뻗은 구간도 있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 놓아 자연스럽게 ‘나무 공부’를 할 수 있다. 구간마다 테마별로 조성된 작은 정원들이 산책길에 재미를 더해준다. 돌담정원에서는 낮은 돌담을 따라 걸으며 노루귀, 엥초, 조개나물 등의 키 작은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고, 습지정원에서는 광릉쥐오줌풀, 동의나물, 노루오줌 등 습지 환경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만나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구간이 차도와 너무 근접해 있는 탓에 쌩쌩 달리는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소음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수목원 왔다가 예약을 안 해서 못 들어갔어요. 대신 봉선사 주차장에 차 세우고 숲길 따라 걷는 중인데요. 차도랑 너무 가까워서 시끄럽고 매연도 심하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광릉 숲길 데크 길에서 만난 탐방객의 말이다. 

국립수목원 
  

 
광릉 숲길의 출발점(혹은 종착점)인 국립수목원은 1987년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인 광릉수목원의 후신이다. 1999년 5월 24일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됐다. 개원 당시 광릉 주변 약 500헥타 면적에 불과했던 수목원은 지금은 광릉숲 전체 2만 2380헥타의 절반에 해당하는 1119.5 헥타, 동서 길이 4km, 남북 길이가 8km에 이른다. 남양주시 진접읍과 별내면, 포천군 소흘읍과 내촌면, 의정부시 민락동 등 2시, 1군 2읍, 1면 1동에 걸쳐 있는 광대한 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산림의 수집과 연구, 보존, 산림정책, 다른 국가와의 협력까지 산림식물·생물과 관련해 A~Z에 이르는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연구기관이다. 
 

   
수목원 안에는 수목원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각종 기념탑이 줄지어 서 있다. 2010년 6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조형물, 아름다운 숲 선정 기념비, 국토녹화기념탑, 산림헌장 기념비 등 각종 기념탑과 조형물들이 그것이다. 
 
테마별로 38개 구역으로 조성돼 취향에 따라 관람로를 선택할 수 있다. 화양목이 즐비한 비밀의 뜰, 백합과 붓꽃으로 꾸며진 백합원, 희귀식물과 특산식물 보존원, 마을정원, 난대식물 온실, 무궁화원, 수생식물원, 무궁화원 등이 있다. 
 
산림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숲 현황과 산림정책, 일제에 의한 산림 수탈의 역사, 각종 목재의 특징과 쓰임새, 산림분포 등 우리나라의 산림과 나무에 관한 모든 유용한 정보들이 모여 있다. 규모나 내용으로나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박물관이니만큼 꼭 들러보는 것이 좋다.  

숲 속의 호수 ‘육림호’ 수면 위로 부서지는 연둣빛 햇살과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물살이 마치 꿈속에서 보았던 풍경처럼 아련하다.  

호수 뒤편에는 200m에 달하는 전나무 숲길이 조성돼 있다. 이곳의 전나무들은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종자를 증식해 1927년경 조림한 것으로 8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한다.
 

 
국립수목원은 수목원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일 5000명으로 관람객을 제한하고 사전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수목원해설, 태교프로그램, 광릉숲 산새탐험 등 당일 참가 프로그램과 유아, 초등학생, 국군장병 등을 위한 사전신청 프로그램과 전문가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개원일은 화요일~토요일이며, 일요일, 월요일, 새해 첫날, 설 및 추석연휴는 휴원일이다. 사전예약이 필수다. ARS나 전화 031-540-2000, 홈페이지(www.kna.go.kr)나 모바일앱(reservenew.kna.go.kr) 등을 이용해 예약하면 된다. 관람료는 1일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만 7~12세) 500원이다.  
 
광릉과 봉선사
       

   
광릉 숲길 데크 길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광릉에 와 닿는다. 광릉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세조의 정비 정희왕후의 능이다. 매표소에서 홍살문에 이르는 울창한 숲이 일품이다.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법인국사 탄문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예종 1년인 1469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광릉에 모셔진 세조를 추모하기 위해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6.25로 전소돼 1960년 이후 중창했다. 
  

 
경내에는 정희왕후가 심었다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 부도전에는 친일파 문학가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글로 쓴 대법당 현판과 봉선사대종이 유명하다. 봉선사 대종은 예종 원년에 세조를 추모하기 위해 봉선사 중창 당시 주조된 종으로, 보물 397호로 지정돼 있다. 봉선사에서는 해마다 연꽃축제가 열리고, 사찰음식, 다례, 불화 강좌 등 불교 관련 다양한 문화학교와 템플스테이가 운영된다. 

주변에는 광릉불고기, 한정식 등의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즐비하다. 가족, 연인, 친구 누구와 와도 좋은 곳이다.  

광릉은 매주 월요일 휴일이며, 입장료는 1일 성인 1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