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이런 곳이? 예술공간으로 재탄생 한 옛 건물

 

경복궁 서쪽에 위치해 있는 서촌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역관, 의관과 같은 전문직을 맡은 중인들과 왕족, 사대부들이 거주했던 곳이었습니다. 비록 경복궁 뒷편에 있는 청와대의 영향으로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지만, 전통가옥들과 대오서점같은 명소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빌딩과 아파트 일색인 서울 속 이색적인 관광지로 자리잡게 되었죠.

또한 이곳에는 과거에 지어졌던 건물들을 방치하거나 철거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재활용한 곳들이 있는데요,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잡았던 교회를 주민들의 휴식과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와 남정 박노수 화백이 생전에 살았던 집을 전시관으로 활용한 ‘박노수전시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촌마을 속 색다른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예술공간’들을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교회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다

1931년 건축된 체부동 성결교회를 리모델링한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 내부 천장은 목재로 만들어진 트러스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시대 흐름과 긴 역사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 2가지 벽돌쌓기 방식(프랑스식, 영국식)으로 지어진 붉은담은 교회 특유의 고풍스러움을 드러냈으며, 2개의 출입구 흔적은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풍습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건축적인 가치가 높았기에 서울시 미래유산과 서울시 우수건축자산(1호)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곳은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더불어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한때 교회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던 신도들은 줄어들었고, 중국 자본이 매입하려고 시도하여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본질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매입하면서 상황은 반전되는데요, 이 교회를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체부동 성결교회는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로 새로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죠.
 

 

교회 뒷편의 별채 한 켠에 남아있는 특별한 꽃담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 뒷편으로 가면 내 집처럼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바로 금오재라는 곳입니다. 과거 체부동 성결교회 시절, 금오재는 교회 관사와 주방으로 사용되었지만 교회가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바뀌면서 이곳도 주민들의 휴식·문화공간으로 쓰임새가 바뀌게 됩니다.

얼핏 보면 서촌마을의 오래된 전통가옥들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이곳에는 정말 특별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금오재의 한 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꽃담이 되겠습니다. 1930년대 민가에서 사용되었던 꽃담이 여기서 발견되었을 때 복원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문화예술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지금도 이 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해 보여도 특별한, 교회 뒷편의 전통가옥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죠.
 

 

친일파의 집이 화백의 집으로, 그리고 미술관으로 바뀌다

수성동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양식 주택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데요, 바로 과거 남정 박노수 화백의 집을 그대로 활용했고, 현재 그의 이름을 따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박노수미술관’입니다. 본래 이 집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자신의 딸을 위해 지었던 집이었지만, 1973년에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여 2011년까지 거주했습니다.

겉모습은 양옥같아 보이지만 집 안에는 온돌방이 있고, 서까래를 노출한 지붕이 얹어져서 특이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죠. 더욱이 이곳은 미술관으로서 가옥 내부에 있는 8개의 방(1층-응접실, 거실, 안방, 주방/2층-욕실, 화실 겸 서재, 공부방, 다락실)을 생전 화백이 살던 모습 그대로 보존하면서 작품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고, 방마다 다른 구성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 밖에는 박노수 화백의 흉상이 분재와 수석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관 밖에 있는 작은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제공하고 있죠. 다만 미술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 점을 꼭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