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채굴판, 북미 회사들 공격 행보…中 주도 판세 격변 예고

비트메인은 비트코인 ASIC 설계, 채굴기 생산, 채굴 클라우드 서비스 등 비트코인 채굴 공급 체인의 여러 단계에서 수익을 낸다.

중국 회사들이 주도해왔던 비트코인 마이닝(채굴)판에 북미 회사들이 뒤늦게(?) 도전장을 던지는 흥미로운 구도가 짜이는 모양새다. 미국의 경우 비트코인 마이닝 사업을 하려는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벤처 투자 사례도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이어원은 15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벤처 투자자 중 1명인 피터 틸 등으로부터 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레이어원은 이번 투자를 발판으로 텍사스 서부 지역에 대규모 마이닝 인프라를 구축하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계획이다. 레이어원의 비트코인 마이닝 전략은 엔드투엔드로 요약된다. 마이닝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외부 업체 도움 없이 직접 통제하는 수직적인 모델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포춘은 레이어원이 자체 전력 변전소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텍사스 서부 지역에서 태양광, 풍력 에너지도 구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레이어원의 알렉스 리에글 공동 창업자에 따르면 이 회사 마이닝 시설은 텍사스 웨스트미드랜드 지역에서 150마일(214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운영된다. 비트코인 마이닝 장비에 탑재되는 칩을 냉각시키기 위해 레이어원이 자체 개발한 기술이 투입된다.

비트코인 마이닝은 통상, 냉각을 고려해 날씨가 추운 지역에서 많이 이뤄지지만, 자체 냉각 기술을 통해 텍사스도 채굴을 할만한 지역이 될 것이란게 레이어원 설명이다. 텍사스주는 저렴한 전기와 가벼운 규제 등의 혜택을 레이어원에 제공할 것으로 전해졌다.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8300달러 수준이다. 2017년말에는 거의 2만달러 수준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많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300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갔던 2016년보다는 훨씬 높은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마이너들이 블록 생성에 따르는 보상을 얻기 위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경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보상은 10분마다 지급된다. 현재 블록 생성 권한을 획득한 마이너들에겐 12.5비트코인이 보상으로 제공된지만, 내년 5월께부터 보상은 반으로 줄어든다.

현재 비트코인 마이닝 판세는 중국계 회사들이 주도하는 구도다. 베이징에 위치한 비트메인의 경우 두개의 대규모 마이닝 풀을 운영하고 있고, 비트코인 마이닝 장비 시장에서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비트메인을 둘러싼 최근 상황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 지난해 중반에만 해도 비트메인은 인공지능을 앞세워 마이닝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내놨지만 이후 비트코인 가격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고, 직원 절반도 내보내야 했다.

레이어원의 비트코인 마이닝 시장 진출은 중국계 회사들의 영향력과 기세가 예전만 못해진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레이어원은 이번 투자를 앞세워 칩 제조부터 전기 생산 및 냉각에 이르는 모든 마이닝 프로세스를 직접 통제해, 세계 최대 비트코인 마이닝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분명히했다.  장기적으로 레이어원은 자사 마이닝 시설을 금융 서비스를 포함해 대형 암호화폐 기업들을 위한 기반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비트코인 잠재력 커질 것…미국이 주도해야”
레이어원은 2018년말 설립된 회사다. 당시만 해도 레이어원은 암호화폐를 위한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던 회사였다. 비트코인 마이닝에 대한 청사진은 내놓지 않았다. 될만한 프로젝트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비전이었다.  프라이버시 코인인 그린 등이 레이원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세상에 공개됐다. 

피터 틸도 투자한 암호화폐 스타트업 ‘레이어원’의 야심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대단히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레이글 레이어원 창업자는 지금보다 암호화폐 가격이 더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입장이다. 하지만 레이어원은 지금 타이밍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운영 자금을 확보한 만큼, 암호화폐공개(ICO)와 관련된 문제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레이글 창업자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나쁜 행위자들은 퇴출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창업 당시 강조했던 메시지를 고려하면 비트코인 마이닝으로의 영토 확장은 다소 의외의 행보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레이글 공동 창업자는 “비트코인은 수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계 회사들의 지배력이 예전만 못해졌다고 해도, 새로 뛰어드는 이들에게 비트코인 마이닝이 블루오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미 비트코인 마이닝 시장은 업체간 경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레이어원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시장 점유율 확대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 마이닝 시장에서 점유율을 좌우하는 경쟁 우위 요소가 변했고, 바뀐 패러다임이 자신들에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저렴하게 마이닝 인프라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핵심”
비트코인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가정용 노트북으로도 비트코인을 마이닝하는 것이 가능했다. 리에글 공동 창업자 역시 스탠포드대 기숙사방에서 비트코인 마이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후 마이닝 경쟁이 심화되면서 마이닝이 최적화된 전용칩(ASIC), 그것도 최신 칩을 탑재한 장비를 소유한 마이너들이 비트코인 보상의 많은 부분을 챙겼다.

하지만 칩 성능이 지배하던 마이닝 시장의 역학관계는 달라졌다는 것이 레이어원 입장. 최신 전용 칩을 사는게 예전에는 마이닝 회사들에게 이점이었을지는 몰라도 이제 이 기술은 범용됐다는 것이다. 레이글 공동 창업자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가 최신 칩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 지출 역량이 좌우하는 마이닝 1.0이었다면, 이제 2.0에 진입했다. 운용 비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이어원이 마이닝 비즈니스와 관련해 모든 것을 가급적 직접 다하는, 이른바 풀스택 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레이글 공동 창업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갔을 때 외부 공급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는 것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풀스택 운영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포춘은 레이어원이 마이닝 시장에서 주요한 위치를 확보한다면 비트코인 글로벌 정치 지형을 흔들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중국계 회사들이 비트코인 마이닝 시장을 주도하다보니 중앙화 및 결탁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미국 회사들이 마이닝 시장 공략에 나선다면 비트코인이 보다 탈중앙화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북미 지역에서 비트코인 마이닝 시장에 뛰어든 회사는 레이어원 뿐만은 아니다. 캐나다 회사인 블록스트림 역시 대규모 비트코인 마이닝 인프라를 퀘벡, 아델, 조지아 지역 등에 짓고 있다. 블록스트림의 샘슨 모우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다른 회사들로부터 점유율을 가져올 기회가 확실히 있다. 전용 칩은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경기장은 점점 평평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판커지는 비트코인 채굴…블록스트림도 본격 참여
회사 측에 따르면 이 회사의 채굴 센터는 300MW(메가와트)급 전기를 수용할 수 있다. 블록스트림이 자체 운영하는 채굴 외에 엔터프라이즈급 채굴 인프라를 기업들에게 호스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블록스트림은 향후 소규모 채굴자들에게도 인프라를 오픈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피델리티 센터 포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FACT: Fidelity Center for Applied Technology)와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 등이 주요 고객이라고 포브스는 전했다. 

황치규 기자 delight@thebch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