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영화도 리셋이 되나요?

1984년 7월 9일 오전 8시 30분, 노래가 시작된다. 리버풀의 5인조 밴드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se to Hollywood)’의 넘버 ‘Relax’를 듣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스테판(핀 화이트헤드)은 화장실에서 알약 두 개를 삼키고 거실로 나와 아버지에게 서먹하게 인사한다. 아버지를 마주 보고 식탁에 앉은 스테판은 어머니의 유품과도 같은 책 <밴더스내치>를 동명의 게임으로 개발 중인데, 이 책은 독자가 직접 이야기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로 꼽히는 콜린 리트먼(윌 폴터)이 소속된 게임 회사 터커소프트를 찾아가 게임 데모를 보여주고 정식 출시 계약을 의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권한다. ‘슈가 퍼프’와 ‘프로스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스테판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모든 광경을 시청하고 있었을 당신이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는 시청자가 이야기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혹은 정해진 시간 내에 선택하지 못하면 넷플릭스가 선택한다. 어떤 식으로든 <밴더스내치>가 제시하는 두 방향 중 한쪽으로 가게 돼 있다는 말이다. 즉 적극적으로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고, 수동적으로 선택된 방향을 따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는 계속 진전된다.

전진만 허락된 건 아니다. 후진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극 초반에 해야 하는 어떤 선택은 이야기 자체를 20여 분 만에 끝내버린다. 하지만 <밴더스내치>는 시청자가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작품이다. ‘돌아가기’를 선택하면 문제의 선택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리셋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되풀이될 수 있다. 공식적인 프로그램 소개에는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이라 명시돼 있지만 <밴더스내치>를 끝까지 본 이들의 시계는 명시된 시간보다 더 많이 돌아갔을 것이다. 선택에, 선택에, 선택을 거듭할 때마다 달리 진전되는 상황들을 보면서 선택하지 않았던 상황들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길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밴더스내치>는 전에 없던 이야기가 아니다. 사소한 선택이 판이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나비효과와 동 시간대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세계를 상상하는 ‘평행 우주’의 설정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동어반복된 소재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리셋 방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타임슬립 영화의 유사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밴더스내치>는 시청자가 직접 나비효과를 선택하고, 평행 우주를 수집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선택을 반복할수록 앞서 목격했던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재조립되면서도 크고 작은 디테일을 수집할 수 있다. 선택 사항에 따라 인과의 경험이 달라지고, 결말의 양상도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관람의 목적이 변하는 것 같다. 선택을 번복할수록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보다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다는 소유욕이 커진다. 새로운 선택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적극적으로 선택을 번복하게 된다. 이는 게임 내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수집하는 재미와 흡사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화인가, 게임인가. <밴더스내치>는 아이러니한 영화다. 수원왕갈비통닭 같은 아이러니 말이다. <밴더스내치>는 게임의 묘미로 관객을 유인한다. 주인공이 죽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게임과 같다. 리셋이 가능하다. 앞서 선택하지 않은 인과를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다. 하지만 막힌 벽으로 뛸 수 없는 캐릭터처럼 <밴더스내치>의 서사도 모든 방향으로 뚫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양한 인과와 결말을 갖고 있지만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선택이 거듭될수록 이것이 우회전과 좌회전을 마음대로 허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꾸 오른쪽 깜빡이에 불이 들어온다. 그 순간에도 좌회전을 선택하는 건 역시 자유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우회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밴더스내치>의 결말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정서로 수렴한다. 각기 다른 결말을 하나씩 수집할 때마다 <밴더스내치>가 해피 엔딩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밴더스내치>가 게임의 문법을 빌려왔지만 지극히 영화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선택이 어찌 됐건 이야기의 큰 흐름은 되돌려지지 않는다. 길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만 목적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끝내 이야기의 결정권을 쥐는 것은 시청자가 아니라 창작자다.

<밴더스내치>가 흥미로운 건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게임의 양식에 잘 어울리는 기획물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과연 <밴더스내치>와 유사한 방식의 인터랙티브 서사가 모든 영화에 적용할 만한 방식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밴더스내치>처럼 이런 방식에 부합하는 기획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영화에 적용하기에는 피로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1시간 30분으로 명시된 <밴더스내치>의 러닝타임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체험했을 때 5시간 12분 13초까지 확장된다고 한다. 넷플릭스에서 인정하는 <밴더스내치>의 결말은 5개 정도라고 하지만 각본가 찰리 브루커는 그것보단 많다고 말했고, 프로듀서 러셀 맥리언은 10개에서 12개 정도까지 변형된 결말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밴더스내치>를 연출한 감독 데이비드 슬레이드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결코 보지 못할 장면들, 즉 ‘골든 에그’가 존재한다며 숨겨진 이스터 에그의 존재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밴더스내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떡밥이 되기도 하지만 <밴더스내치>를 몇 차례 플레이한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선택을 다시 거듭해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대체된다. 마치 영동대교로 건너야 할지, 동호대교로 건너야 할지, 자꾸 어느 방향으로 갈지 묻는 택시 기사를 재차 만난 기분이랄까.

무엇보다도 5시간 가까이 유사한 장면을 되돌려가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경우의 수를 이루는 서사의 조각들이 일정한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다양한 인과로 진전되는 각기 다른 서사로부터 완성도의 편차가 느껴진다. 어떤 행위는 어떤 결말을 낳기 위한 수단 이상의 가치가 없어 보여서 해당 서사 자체가 잉여처럼 와닿고, 어떤 행동은 그저 과격한 충동으로 시청자를 몰아넣는 충격요법에 불과한 눈속임처럼 보여서 가증스럽다. 그래서 오히려 1시간 30분 분량으로 선별된 서사를 바탕으로 편집된 <밴더스내치>가 어떤 영화일 수 있었을지 되레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밴더스내치>는 분명 흥미로운 콘텐츠다. 콘텐츠와 소비자가 일대일로 매칭되는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가능한 최상의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밴더스내치>는 신기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고자 기획된 아이디어 파생품이 아니라 충실한 내면의 디테일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작품처럼 보인다. ‘벤더스내치’는 1980년대의 주류 게임사였던 이매진 소프트웨어에서 실제로 개발하던 비디오게임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밴더스내치>가 시작되는 1984년 7월 9일은 이매진 소프트웨어가 도산한 날이라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역사에서 사라진 게임을, 게임을 테마로 한 영화가 길어 올린 셈이다. 또한 극 중에서 <벤더스내치>의 원작자로 등장하는 제롬 F. 데이비스 역을 맡은 이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 1980년대 당시 8비트 비디오게임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였던 제프 민터라고 한다. 이처럼 깨알 같은 이스터 에그는 <밴더스내치>를 다시 한번 플레이하고 싶게 만드는 진심으로 와닿는다. <밴더스내치>가 던지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남기고 싶은 건 그래서다. 영화도 리셋이 될까? 그렇다. 오직 넷플릭스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