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연을 끊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

※ The Guardian의 「‘I wish I’d told Dad how much I hated him’ – when children ditch their parents」를 번역한 글입니다.


로라의 이야기

로라는 여느 아이처럼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로라네 가족은 단란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에 관한 기억은 로라에겐 온통 어둡고 우울한 잿빛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저를 향해 ‘널 낙태하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어. 너를 뱄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거든.’이라고 늘 말했죠.

로라의 아빠는 로라가 아주 어릴 때 집을 나갔습니다. 로라는 아빠가 집을 나가 엄마의 삶이 더 분노로 가득 차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나갔으니 엄마마저 집을 나갈 순 없었잖아요. 어린 자식이 있으니 누구 하나는 집에 남아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나 싫었던 거죠. 한 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를 며칠간 맡아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가족이란 원래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로라가 엄마와 연을 끊은 건 10대가 되고 난 뒤의 일입니다.

엄마의 안중에 저는 없었죠. 늘 남자의 사랑을 갈구했어요. 연인 관계가 최우선순위였는데, 제가 15살 되던 해에 엄마는 남자친구랑 아프리카로 가버렸어요. 저한테는 아무런 상의 한 마디 없었죠.

로라는 아직도 엄마의 그 결정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그 이후에도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변변한 해명도 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로 그렇게 가버린 다음에도 저한테 가끔 연락이 오긴 왔어요. 늘 같은 이유였죠. 돈 좀 부쳐 달라고. 어느 날 더는 못 참겠다고 생각하고 연을 끊어버렸어요.

로라는 엄마가 그렇게 된 건 엄마도 어려서 사랑을 못 받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려 노력해봤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빠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기에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빠는 달라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요. 공감 능력도 없고, 감정 자체가 없는 사람 같아요. 아빠랑 연락을 끊은 지도 7년이 됐어요.

로라는 여전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는 잘 지냅니다. 아들과 손녀의 관계를 어떻게든 되돌려보려는 두 사람의 노력은 번번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오히려 로라는 그때마다 아빠에게 질리고 상처만 받았죠.

아빠는 제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가서 새로 가정을 꾸렸어요. 저는 그것도 사실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새로운 가정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엄마, 아빠와 이렇게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히 제 정신건강은 평생 피폐했어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익혀요.

로라는 내년에 결혼을 앞두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나 아빠를 결혼식에 초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미워하고 싫어할까 자책도 많이 하고 마음 졸이기도 했어요. 크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 제일 후회되는 건 아빠한테 더 일찍 내가 당신을 얼마나 증오하고 혐오하는지 똑똑히 말하지 못한 거예요. 사실 엄마는 증오하지는 않아요. 엄마 생각을 하면 딱하다는 마음밖에 안 들어요. 다만 엄마가 제게 한 일 때문에 제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는 알아줬으면 해요.

 

앨리스의 이야기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고 살아간다는 건 대단히 극단적인 선택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앨리스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아빠는 제가 8살 때 집을 나갔고, 엄마랑은 독일로 10년 전에 이사 온 다음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어요. 모성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인 데다가 성격이 너무 괴팍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 늘 제가 괴롭힘을 당했죠. 평생 엄마는 단 한 번도 제게 따뜻한 말을 건넨 적이 없어요. 저는 사랑받는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고요.

로라와 마찬가지로 앨리스도 아마 엄마가 불우하고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성격이 그렇게 나빠졌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될 만한 품을 갖추지 못한 채 어쩌다 보니 아이를 낳아버린 거죠.

나중에 제가 딸을 낳은 뒤에는 엄마와 제 사이가 더 나빠졌어요. 제가 엄마 인생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게 자명하게 드러났죠.

앨리스의 엄마는 딸이나 손녀를 보러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네 집에는 수시로 놀러 가고 손주도 봐주십니다. 이러한 명백한 차별이 앨리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엄마한텐 분명히 똑같은 손주인데, 내 딸은 유령 취급하고 오빠네 아이들만 예뻐하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런 엄마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딱하지도 않아요. 그저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앤디의 이야기

앤디는 20대 초반부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을 끊고 산 지 올해로 25년이 됐습니다. 앤디는 자기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집안 분위기, 서로 너무 다른 가치관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집 있잖아요,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입 다물어’ 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집이요. 우리 집이 그랬어요. 부모의 말이 곧 법이었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화다운 대화가 오간 적이 없고요, 부모님이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것, 제가 잘하는 것을 격려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앤디는 실제로 자기가 무얼 하든 부모님에게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늘 핀잔을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눈에) 저는 뭐든 잘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뭔가를 썩 잘 해내면 그때 아버지는 저를 칭찬해주는 대신 자기가 더 잘하니 까불지 말라는 식으로 저를 찍어눌렀어요.

앤디는 16살이 된 뒤에도 엄격한 집안 수칙 탓에 8시면 침대에 누워야 했습니다. 그 시간에 잠을 청할 수 없던 앤디는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 지루함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시사 문제나 정치 관련 뉴스, 토론을 들으면서 앤디는 집 밖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세상을 알고 나서 보니 부모님이 권위를 앞세워 강요하던 신념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성, 인종을 차별하는 편견으로 가득한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몸서리칠 만큼 자명하더라고요. 그렇게 잘못된 생각인데도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순간 집 안에서는 입막음 당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야 했죠. 결국,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사라졌어요.

앤디의 아버지는 앤디가 18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앤디는 상실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아빠랑 같은 집에 살았지만, 1년 넘게 대화 자체를 하지 않은걸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더 잘해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타깝지만 조금도 들지 않아요. 그냥 같이 있기 너무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이었어요.

몇 년 뒤 앤디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습니다.

큰 꿈을 이룬 것 같아 정말 저 자신이 자랑스러웠죠. 그런데 엄마는 달랐어요. 어디서 집을 구해도 어디서 이런 임대주택 같은 집을 구했냐며 못마땅해했고, 왜 하필이면 동네도 빈민가에 살려 하냐고 저를 나무랐죠.

직장에서 계속 승진하며 경력을 쌓아나가는 데도 엄마는 앤디만 보면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형과 비교도 많이 했죠.

21살이 됐을 때 저는 제가 이룬 성취, 저 자신의 모습에 대체로 만족했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자기가 설정한 기준에 제가 한참 모자란다는 이유로 저를 경멸하고 부끄러워했어요.

마침내 앤디는 엄마, 형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가족의 연을 끊기로 한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25년간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결정도 아녔어요. 말로만 가족이지 뭔가 공유하는 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엄마랑 형은 저랑 피만 섞였을 뿐 저라는 인간을, 제가 선택할 삶을 이해하고 응원해줄 생각이 없었죠.

앤디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듣고 놀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관계를 억지로 다시 살려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강제로 부모님을 보고 지내는 삶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자녀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자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부모는 자식이니 응당 자신을 챙겨줄 거라고 기대할 자격이 없어요.

 

헬렌의 이야기

이혼 때문에 자식과 부모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헬렌의 자녀 4명 가운데 2명은 올해 헬렌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다 큰 자식이니 생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헬렌에겐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헬렌은 폭언과 모욕을 일삼던 아이들의 아버지와 8년 전에 이혼했습니다.

2011년에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아이들과 저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들은 4월부터 연락이 없고, 둘째 딸도 모든 대화 채널에서 저를 차단했어요.

헬렌은 전 남편이 결혼을 파탄으로 이끈 모욕과 거짓말을 아이들에게도 해 오해를 만들어냈고, 오해가 분노와 실망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클 만큼 커서 이제 저도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려고 했는데, 전 남편은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제가 원하는 걸 못하게 하려 했어요.

헬렌을 조종하려 한 몇 년 동안 남편은 계속해서 헬렌의 친구와 가족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루는 뭘 좀 사러 슈퍼마켓에 갔는데, 남편이 가족, 친구들에게 제가 술에 잔뜩 취해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며, 갑자기 실종됐다고 말을 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밴드에 가입하자 제가 미쳐서 유명한 연예인이 된 다음 집에서 도망치려 한다고 말하고 다녔죠.

터무니없는 소리도 계속 듣다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 사람들은 남편의 말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고, 헬렌은 가족 안에서 점점 외톨이가 됐습니다.

몇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특히 전 남편의 말을 많이 믿어줬죠.

결국, 남편과 이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의 이혼은 자식들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헬렌은 이혼 후에도 자식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전 남편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헬렌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파티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저를 거기 못 가게 하려고 무슨 일이든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단 한 번도 바람을 피운 적이 없지만, 그 사람은 항상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고 의심했죠.

연락이 끊긴 두 자녀와의 관계는 특히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헬렌은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싶었지만, 전 남편은 그럴 기회를 원천 봉쇄했습니다.

정확히 왜 아이들이 제게 실망하고 제게서 멀어졌는지도 사실 저는 잘 몰라요. 남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니까요. 아이들이 제게 한 말이라곤 ‘엄마는 우리한테 관심이 없어’ ‘엄마는 아직도 우리를 애 취급해’ 정도가 다였거든요.

자식과 연락이 끊기는 건 분명 대단히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헬렌은 아이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아이들도 아빠한테 세뇌당할 수밖에 없던 거죠. 아빠가 장악한 한 아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어요. 우물 밖에 나와 진짜 세상을 보게 될 날이 있겠죠.

헬렌은 자식들과 다시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저와 아이들 사이에 탄탄한 유리막이 쳐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밖에서만 안이 보이는, 유리지만 깰 수는 없는 그런 막이요. 다시 아이들의 엄마로 돌아가고 싶어요.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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