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가리지 않는 30년 차 소방관의 삶은 어떨까?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아이구, 조금 늦었습니다. 회의가 이제 끝나서…!”

지난 18일, 서랍 속 인터뷰의 스무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경남 사천소방서를 찾았다. 주황색 유니폼을 갖춰 입은 소방관들 사이로 분주해 보이는 이희옥(58)씨가 나타났다. 이 씨는 사천소방서 동금119 안전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동네 누님 소개로 선을 봤는데, 그 자리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죠. 그때 제가 29살이었는데 결혼 적령기라 선을 몇 번 봤어요. 선 볼 때, 전 딱 두 가지만 봤습니다. 첫째는 생활력, 둘째는 시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느냐. 다른 건 안 봤죠.”

왜 하고 많은 조건 중에서 그 두 가지일까? 그의 답은 심플했다. 당시에는 소방관이나 공무원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았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려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 ‘이 월급을 가지고 과연 같이 살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단다. 그는 아내 설향순(54)씨의 털털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맘에 ‘쏙’ 들었다고.

그 뒤부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둘은 만난 지 6개월 만인 1991년 10월 26일 부부가 됐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에서 그들은 두고두고 회자할 시트콤 한 편을 찍었단다.

“잠깐 나갔다 호텔로 왔더니 아내가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요. 잘 시간도 아니고 분명히 안에 있는데 벨을 아무리 눌러도 잠잠해요. 이 사람이 처음부터 주도권 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죠. 나중에 문이 열렸는데, 아내는 벨소리가 전화 오는 소린 줄 알고 애꿎은 전화만 들었다 놨다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장난전화를 하지? 하면서. 저희끼리 신혼 첫날 돌아설 뻔했다며 웃곤 해요.(하하)”

이들 가족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IMF 때쯤, 주식을 하던 이씨가 집에 있던 재산을 홀라당 날린 것. 이를 회복하기 위해 5년 정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살았다. 

슬비(28), 은비(24), 지효(19) 세 아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줬다. 넉넉한 터울이 부부의 금슬을 짐작하게 했다. 지금 첫째는 특수교사, 둘째는 간호사로 어엿한 사회인이 됐고, 셋째는 고3이라 누구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단다. 애들이 워낙 알아서 잘 컸다는 희옥씨는 자신보다 애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게 행복이라고. 

“큰 딸이 사위를 데려왔을 때 남들은 서운하고 그렇다는데, 저는 담담하고 좋더라고요.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안 할 거면 몰라도, 기왕 결혼할 거면 빨리하라는 맘이었죠. 세상이 흉흉하니까 늦게까지 데이트하거나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도 되고요.” 

어느새 소방관 생활 30년 차라는 그. 직업이 직업인 만큼 화재 현장을 자주 접하는데, 불이 무섭지는 않을까?

“큰 사건들을 많이 접해 와서 지금은 덤덤하죠. 화재 현장에 가면 어떻게 작업을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해요. 내부 구조를 꿰뚫고 있는 곳이면 수월하죠. 불보다 무서운 건, 낯선 구조의 화재현장을 맞닥뜨렸을 때예요.”  

생과 사가 오가는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할 법하다. 그래서 이 씨는 매일 집에 가면, 아내와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대화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소방 일은 행정직이 아니라 현장직이에요. 국민을 위해서 몸으로 다가서는 업무라고 생각하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구조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럼에도 저희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폭언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속으로 삭이는 거죠.”

이외에도 이씨가 스트레스를 푸는 법은 취미활동이다. 수영, 스킨스쿠버, 요트 동호회까지 하고 있다는 희옥씨. 말 그대로 ‘물불 안 가리는’ 사나이다. 요즘에는 철인 3종 경기에 나가기 위해 한창 사이클 연습 중이라고. 직업, 취미까지 어찌보면 인간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다.   

“40대 후반 되기 전까지는 애들 키우고, 일한다고 정신없었죠. 어느 순간에 이렇게 살다가는 내 인생이 없겠다 싶은 거예요. 그때부터 수영, 서예, 스킨스쿠버, 요트 등 다양한 취미를 갖게 됐죠. 퇴직이 2년 정도 남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해서 남은 삶을 건강하고 멋있게 다듬어나가고 싶어요.(하하)” 

사천소방서 소방관들의 하루 평균 출동 횟수는 4.5회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는 소방관들도 결국 사람이다. 그들이 우리 곁의 영웅이 아닐까. 돌아서는 이 씨의 뒷모습이 큰 산처럼 늠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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