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밑이 까만 이유, 세상에나

남도의 봄은 타닥타닥 아궁이의 나무 부지깽이 타들어가듯 순식간에 터져 버린다. 늘 그렇듯이 봄이면 곳곳의 들과 산에 꽃봉오리들이 피어 불탄다. 화사한 꽃불 소식에 남도로 향하고자 상춘객들이 아우성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남도는 지금 매화 축제로 떠들썩하다.
 
독보적 매화축제장, 광양매화마을
  

 
봄의 섬진강은 어느 계절보다 발길 닿는 이들이 분주한 곳이다. 전북 팔공산 중턱에서 시작하여 남원, 곡성을 지나 구례와 하동을 휘감으며 광양에 다다르는 섬진강. 광야를 품은 강은 굽이굽이 흘러 화사한 매화꽃 덮은 마을을 안는다. 겨우내 못다 핀 설움을 봇물 터지듯 매화들이 섬진강 위에 펼쳐진다. 섬진강에 핀 매화는 넓은 강과 어우러져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봄이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광양시 다압면에 자리한 매화마을이다. 섬진강변 야생화들의 꽃망울이 활짝 터진 후 깨어난 매화. 이곳은 화사한 꽃눈에 뒹굴고자 십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는 상춘객들의 즐거움이 된다.
   
매화가 3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3월 중순경 절정을 이룰 무렵, 어김없이 광양시 다압면 일대에선 매화축제가 열린다.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섬진강변 곳곳에 피어 있지만, 도사리 마을 산 중턱에 자리잡은 ‘청매실농원’이 꽃구경하기에 으뜸이다.

이곳에 매화꽃 사이로 초록빛 대나무가 대조를 이루는 곳이 있다. 싱그러운 녹색 잎이 무성한 대숲의 길섶에는 온갖 야생화가 수놓아져 있다. 샘솟듯 피어오르는 영감이 느껴져서인지 임권택 감독도 영화<취화선>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매화마을 초입, 조우하게 되는 2000여 개 항아리들의 정열이 이채롭고 언덕을 따라 요리조리 난 오솔길이 다채롭다. 푸른빛이 감도는 청매화, 발그스름한 빛깔의 홍매화, 청아한 하얀 백매화가 안겨주는 봄의 동화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산책로 곳곳마다 탐방객들이 무리 지어 매화꽃과 도란도란 소통하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입가에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는다.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매화향은 따뜻한 봄을 느끼게 한다. 시원스레 펼쳐진 섬진강과 매화의 모습에 열없이 애잔함이 몰려온다.
 
광양매화축제는 3월 8일부터 17일까지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시작한다. 해마다 기온의 포근함이 빨라져 꽃 피는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올해는 매화축제 개막일을 일찌감치 당겼다고 한다.

추억 따라 매향 따라, 원동 순매원
 

 
경남 양산시 원동면 일대의 매화도 앞다퉈 꽃 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순매원 간판을 내건 농원 옆으로 나란히 선 기찻길과 낙동강이 한 폭의 그림이다. 매화가 핀 춘삼월의 순매원은 말 그대로 눈 덮인 설원(雪原)이다.
 
살금살금 고양이 발걸음 마냥 다가온 봄은 원동의 매화로 환해졌다. 원동에 매화축제가 시작되면 좁은 이차선 도로가 주차장이 된다. 전국 꽃잔치에 인파가 안 몰리는 곳 없으니 이점 유념해 여행에 참조하시길 바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농원의 매화는 눈밭이다. 저마다 매화의 숨결을 느끼고자 각자의 노하우를 발휘한다. 농원의 매화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신선 노름하는 이들도 있고 인증샷을 남기고자 연신 셔터를 누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사람들이 들어찬 매화나무 밑이 까맣다.
 
순매원의 매화는 나에게 아버지 같다. 원동에 핀 매화를 보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작은 매화 사이로 빙그레 웃는 아버지. 밝은 표정에서 핼쑥한 표정까지 변화무쌍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밀양은 아버지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밀양행 기차를 타고 원동을 지나 삼랑진, 밀양에 가곤 했다. 찻길로 갈 땐 고불고불 할머니 등 같은 원동길을 걸쳐 삼랑진역에서 신부암 고개를 지나 밀양을 갔다. 추억이 묻어나선지 원동 순매원에선 아버지 향이 난다.
 
원동 매화는 낙동강 제방을 끼고 하나둘 피어 눈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이용하기보단 기차여행이 편하지 쉽다. 경부선 원동역에서 내려 매화 군락지 순매원까지 200m를 걸으면 매향의 정취에 취할 듯하다. 올해 양산 원동매화축제는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

땅끝마을 해남의 보해매실농원 
 

  
땅끝 마을에서 들려오는 매화의 손짓을 뿌리칠 수 없어 해남으로 향했다. 꽃소식은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조금만 머뭇거리면 놓치기 일쑤다. 매화향이 이렇게 향긋한지 불혹이 되도록 몰랐다. 흔들림 없는 불혹의 끝자락. 꽃바람에 어디로 가야 될지 흔들리고 흔들린다.
 
땅끝마을 해남의 보해매실농원도 꽃 향연의 상차림을 펼쳐놓고 상춘객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 땅끝에서 느껴지는 매화 향기를 맡으러 보해매실농원에 갔다. 이곳은 주류 전문 회사인 (주)보해가 운영하는 매실농원으로, 봄이면 흰빛과 분홍빛의 매화꽃 별천지다. 보해는 1979년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 약 14만 평 매실농원에 매화나무 1만 4500 그루를 심었다. 그 결과, 매화 수확물인 청매실로 빚은 ‘매취순’이 탄생했고 보해의 대표 매실주가 됐다.
 
이왕이면 해남 땅끝 매화축제 기간을 맞추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떤가. 사람 반, 매화 반으로 뒤죽박죽이 된 축제 기간보다 조용한 매화 터널을 걸어보고 소똥을 밟아도 좋다.
  

 
보해매실농원의 매화는 군열(軍列)을 이루듯 줄 맞춰 서 있다. 농원의 가로수는 동백나무로, 동백꽃의 유혹을 따라 날아든 새들이 매화 밭에도 포르륵 거린다. 꽃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다니는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의 잉태로 이어진다. 새들은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 일을 하는지 모르고 단지 본능에 따라 날개를 파닥거린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보고 울지 않았던 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보해매실농원에서 연출됐다. 이곳 매화는 영화만큼이나 방문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주인공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매화 밭의 로맨스. 나만을 위한 봄날의 정원이 바로 해남 보해매실농원인 듯하다. 하얗게 물든 매화는 질퍽한 봄기운 받은 땅만큼 에너지를 뿜고 있다.
 
전남 해남 보해매실농원은 전라남도 관광지 중 ‘이달의 추천 관광지’에 뽑혔다. 즉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남도 꽃여행’ 테마에 선정됐다. 국내 매화 재배지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보해매실농원에서도 축제가 개최된다. 올해는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 동안 제7회 땅끝 매화축제가 열린다.

연신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고 있다. 미세먼지를 두고 ‘최악이다’라는 표현은 인제 고로한 표현이다. 살수차까지 등장해 물을 뿜고 있는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남도의 봄을 만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