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표 내고 왜 마트를?" 이 질문에 답하다

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은 어디입니까?”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할 수 없이 혼자서라도 묻고 답하곤 했다.
 
“군산 한길문고입니다. 음하하하핫! 제 책 세 권이 누워 있거든요.”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한길문고에서 ‘상주작가’로 일하고 있다.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와 재밌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벌인 일들을 ‘상주작가의 서점에세이’로 기록한다.

대기업 퇴사하고 벌인 일

지난해 10월 첫 번째로 쓴 글은 당연히 한길문고 이야기였다. 군산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글을 읽고서 “한길문고 그립네요”라고 했다. 충북 제천에 사는 이병일 선생님은 존재조차 몰랐던 한길문고에 전화해서 책을 주문했다. 시민들이 한길문고에 쏟아준 사랑을 알게 된 김경욱씨는 서점에세이에 댓글을 달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산북동 쪽에서 작게 장사하고 있는데 정말 우연치 않게 작가님 글에서 한길문고를 보니 참 반갑네요. 종종 가 보긴 했어도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경욱씨는 마트를 하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실전 경영서들을 읽고는 장사에 적용도 해 본다. 4천여 명의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낼 때는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인용한다. “이거 누가 썼어요?” 손님들은 사랑 고백 문자를 받은 것처럼 설레는 목소리로 묻는다.
 

 
지방소도시 군산. 경욱씨가 제대로 알려고 몸부림치는 분야의 공부는 할 데가 없었다. 유튜브에는 있었지만 밀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였다. 책을 쌓아놓고 읽게 된 경욱씨는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돈 주고 책을 사야 하나?”
 
서울에 살 때 경욱씨는 도서관 책을 읽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재벌 아들이 기획실장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욱씨네 팀은 바뀐 임원이나 대표의 뜻에 맞게 그전의 목표를 고치는 작업을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대기업에 대한 환상을 가진 청년이었다. 식구들 중에서 큰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경욱씨가 유일했다.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장사해서 먹고 살며 아이들을 키우고 뒷바라지 했다. 순조롭게 입사한 경욱씨는 ‘임원까지 해보자’고 결심한 적도 있다. 일하는 사람들을 알고 싶어서 다른 부서의 선배들 모임에도 여러 번 가봤다.
 
회사원들은 과장이나 부장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적당한 월급을 받고, 적당한 사람과 결혼하고, 적당한 빚을 내고, 적당히 좋은 동네에 아파트를 사고, 적당히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하고, 적당한 사교육을 아이들에게 시키는, 적당히 안온한 삶이 그려졌다.
 
“뭔가 벗어날 수 없는 기찻길 같은 게 보이는 거예요. 앞으로 내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이거를 20년 했다 치고 밖에 나갔는데 붕어빵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비즈니스맨의 본질은 햇반을 떼다 팔든, 붕어빵을 팔든, 석유를 팔든, 팔 수 있는 능력이거든요. 아니라는 답이 나왔죠. 2년 반 다니고는 퇴사했죠. 서른 살 때였어요.”
   
아람코. 정유사에 근무했던 경욱씨가 경력을 살려 최대한의 연봉을 받기 위해서 가려고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이다. 그러니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결심은 어렵지 않게 했다. 이미 10년 전에 경욱씨의 아버지는 새만금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를 눈여겨봤다. 군산으로 이주해서 건축과 부동산 일을 하고 있었다.
 
동네마트는 돈을 벌면서 경영 역량까지 높일 수 있는 일로 보였다. 경욱씨는 주변의 아파트 단지 가구수와 원룸의 공실률을 알아봤다. 인구 대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트에 와서 얼마를 소비할 것인가 예측했다. 반경 1킬로미터 안의 편의점 수와 각각의 매출을 조사했다.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니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2016년 9월 6일. 경욱씨는 수산, 정육까지 겸하는 마트를 개업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들어온 물건을 검수하고 진열하고 주문받으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뽑아본 손익계산서는 맞지 않았다. 손님이 느는 것만은 확실했다.
 
“장사는 단순히 돈을 남겨 먹는 게 아니고, <상도>에 나온 것처럼 사람을 남기는 일이에요. 군산에서 제일 장사 잘 되는 데가 이성당이잖아요. 남 다른 게 있겠죠. 옛날부터 노점상들은 이성당 앞에 좌판을 벌였대요. 사장님은 안 쫓아내고 배고플 때 드시라며 오히려 빵을 줬고요. 지금도 팔고 남은 빵이 아니라 새로 만든 빵을 기부한대요.” 
 

  
사람들 마음에 가닿고 싶은 경욱씨는 ‘십시일반’과 ‘고사리 희망장터’를 기획했다. 수박을 산 고객들은 마트에서 제공한 기부 스티커 1장에 자기 이름을 써서 현황판에 붙였다. 기부한 스티커가 10장이 될 때마다 기부한 고객의 이름을 써서 지역아동센터와 경로당에 수박 1통씩을 후원했다. 그게 십시일반이다.
 
동네의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쇠고리, 향초, 손거울을 만들어서 ‘고사리 희망장터’를 열었다. 동네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연탄을 사드릴 거라는 아이들의 정성에 반했다. 마트에 와서 아이들이 만든 물건을 사주었다. 수익금은 100만 원을 훨씬 넘었고, 연탄까지 배달한 아이들은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 동네를 더 잘 되게 하는 힌트가 책에 하나라도 있으니까 계속 읽었어요. 마트는 밤 9시부터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문 닫을 때까지 2시간 정도는 작정하고 읽을 수 있죠. 열심히 읽다 보니까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브런치(글쓰기 플랫폼)는 저희 세대에서는 유명하죠. 친구들한테 좋은 반응 얻었던 글을 작가 신청 하려고 올렸죠.”
 
경욱씨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네 번 낙방했다. ‘전 여자 친구가 담당자로 근무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는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싹 분석하고는 경영관리 매뉴얼과 MAU(월간 실질 이용자)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썼다. 합격! 쓰라린 과정을 거치고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건 지난해 6월이었다.
 
“회사 밖은 전쟁이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도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경욱씨는 ‘소상공인 탈선일기’를 썼다. “도대체 왜 정유사 그만두고 마트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글감을 정리했다. 마트 한켠에서 글을 쓰고, 퇴근하고는 또 쓰고, 아침에는 퇴고해서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상공인 탈선일기’에 호응했다. 경욱씨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이성당 대표와 대전 성심당 대표도 연락을 해왔다. 세상으로 흩어진 글이 사람들 곁에 남는다는 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경욱씨는 생생한 기쁨을 느꼈다. 매장처럼,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해서 ‘랜덤 레스토랑’, ‘스타트업처럼 마트 경영하기’도 써나갔다.
 

“밀레니얼 세대가 회사에서 느끼는 회의감과 퇴사, 자영업자의 고단함과 보람 등 다양한 방면을 아우르는 통찰이 뛰어나다. 한 청년이 커리어와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줌으로써 주체적 삶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 왓어북 안유정 에디터의 심사평

올해 3월 4일 경욱씨는 ‘브런치북 대상’ 수상자가 됐다. 그가 쓴 ‘소상공인 탈선일기’는 곧 책으로 나온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이야기였다. 지난해 봄만 해도 경욱씨는 브런치 작가 심사에서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는데.

마트 한켠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청년
 
“낮에는 귤과 생강을 팔고 밤에는 글과 생각을 팝니다.”
 
경욱씨가 브런치에 자신을 소개하는 첫 문장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울에 가는 사람. 독서모임에 참석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사람. 나는 한길문고에서 경욱씨를 두 번 만났다.

합쳐서 6시간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어쩐지 한길문고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북클럽에 온 것 같았다. 똑같은 책을 읽었지만 색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막 웃음이 나오고 눈물도 찔끔 나는 분위기. 헤어질 때면 “요새는 한길문고 오는 날만 기다려요”라고 말하는 북클럽 사람들의 다정함이 생각났다.
 
“마트에서 북클럽 여는 건 어때요? 한길문고 북클럽 회원은 20대부터 60대까지 있거든요. 책을 읽어도 결국은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사람들 이야기 듣는 거 너무 좋아요.”
 

나는 즉흥적으로 경욱씨에게 말했다. 소상공인이자 기획자인 서른세 살 청년은 대답했다.
 
“재밌을 것 같네요.”
 

사람들이 일상을 건사하기 위해서 드나들어야 하는 동네마트. 그곳에서 시작하는 북클럽은 경욱씨를 닮아갈 수도 있겠다.

“제가 5년 뒤나 10년 뒤에 틔울 씨앗을 뿌리고 있는 건 맞는데요. 당장 오늘, 열심히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는 내일 뭐가 될지 모르는 상태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이 뜸한 밤에는 마트 한켠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