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위조 '사기꾼'은 어떻게 예술계 거장이 됐나

르네상스 인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다. ‘일 기간테(Il Gigante, 거인이라는 뜻)’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 역시 어렸을 때는 선배들의 작품을 모방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여러 건의 위작 논란에도 휩싸였다.
 
미켈란젤로가 따라 그렸던 마사초  
 

  

피렌체 아르노 강 남쪽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Santa Maria del Carmine) 성당 내 브랑카치 예배당(Brancacci Chapel)에는 미켈란젤로가 따라 그리던 그림이 있다. 르네상스 초기 화가였던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낙원에서의 추방’과 ‘세례를 베푸는 베드로’다.
      
‘낙원에서의 추방’은 신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이브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울부짖고 있고, 아담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그림이 없었다. 성경 속 인물들은 언제나 무표정하거나 온화한 모습이었다. 
       
‘세례를 베푸는 성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다. 세례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성스럽고 평온하기보다는 추위에 잔뜩 움추린 채 떨고 있다. 당시 이런 인간성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파격적이었다. 마사초의 두 그림은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 시대정신이 이동하는 르네상스의 서막을 보여준다.      

어린 미켈란젤로는 공방의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마사초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연습했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동료 중 한 명인 피에트로 토리자노의 그림이 형편없다며 조롱했다. 분노한 피에트로는 주먹을 날렸고, 미켈란젤로의 코는 부러졌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예술가들에게는 거침없이 독설을 날렸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조언이나 간섭은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시스티나 성당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교황이 작업 진행 상황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려봐야 알지요.”
 
이 말에 교황은 몹시 분노하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미켈란젤로를 내리쳤다.
 
미켈란젤로의 위작
 

 
미켈란젤로는 다른 동료 예술가들에게 독창성이 없다며 독설을 날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미켈란젤로도 위작을 한 적이 있다. 화가이자 작가인 최연욱은 위작을 다른 유사한 개념들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모작(Imitation) : 취미 또는 연습용으로, 타인이 만든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작품
– 위작(Forgery) : 의도를 가지고 다른 작가가 만든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작품
– 대작(Substitute) : 작가를 대신해서 작품을 만드는 행위

 
미켈란젤로가 어렸을 때 마사초의 그림을 따라 그린 건 연습을 위한 모작으로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스무 살 때, 미켈란젤로는 큐피트 상을 조각한 다음 이것을 땅에 묻었다 파냈다. 그리고 연기를 쐬어 오래된 골동품으로 위조한다. 이 가짜 골동품은 미술상을 거쳐 리아리오(Raffaele Sansoni Galeotti Riario) 추기경에게 팔린다.

얼마 안 돼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 추기경은 환불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 위작이 로마의 지인들에게서 찬사를 받자 추기경은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후원자가 된다. 덕분에 2년 뒤에는 그 유명한 피에타 작업까지 맡을 수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1506년 초,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었다. 당시 그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해 1월 14일, 티투스 공중목욕탕 유적지 근처 프레디라는 사람의 포도밭에서 엄청난 고대 조각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켈란젤로는 동료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1443~1516)와 함께 곧바로 현장으로 갔다. 발굴이 끝난 상태는 아니었지만, 줄리아노는 그것이 바로 라오콘 군상이라는 고대 조각상이라고 확신했다.
 
라오콘은 트로이의 신관으로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두 아들과 함께 고통스런 벌을 받는다. 라오콘 군상은 이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 최고의 고대 조각 중 하나라 평가받는다.
 
라오콘 군상은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 23~79)가 쓴 <박물지>에 기록돼 있다. 그는 이 작품의 작가로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를 언급했다. 또한, 2.5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이 한 덩어리의 대리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와 동료들이 조사한 결과, 네 개의 접합부가 있었다. 즉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를 교묘하게 감추어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라오콘 군상은 위작인가
 

 
라오콘 군상은 발견됐을 때부터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현시대에도 위에서 언급한 최연욱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이 라오콘 군상은 미켈란젤로의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발견 당시 라오콘의 오른팔이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세월에 비해 상태가 너무 깨끗했다. 그리고 플리니우스가 라오콘 군상의 작가로 언급한 세 명은 로도스 섬 출신이다. 지금의 터키 인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어떻게 로마 땅 속에 발견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표현 방식이 미켈란젤로와 매우 흡사하며, 대리석의 재질 역시 미켈란젤로가 예전에 구입했던 것과 유사했다. 그리고 라오콘의 오른팔을 복원하기 위한 회의에서 다른 전문가들은 팔을 하늘 위로 뻗은 형태일 것이라고 했지만, 미켈란젤로만 머리 뒤로 접힌 모양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906년, 최초 발견 장소 인근 공사장에서 오른팔이 발견된다. 놀랍게도 미켈란젤로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오른팔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작품의 진짜 작가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라오콘 군상은 네로 황제 시절에 로마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에게는 위작할 이유가 없었다. 보통 위작의 이유는 돈인데, 당시 미켈란젤로는 이미 최고의 몸값을 자랑했다. 그리고 밀려드는 주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라오콘 군상은 그 정교함이나 크기로 봐서 단기간에 만들 수가 없는데, 미켈란젤로에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켈란젤로가 오른팔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한 것은 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탁월한 천재성과 상상력의 결과이지 위작의 근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과연 이 조각상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그 라오콘 군상이 맞는가’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 라오콘 군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최초 발견 당시 미켈란젤로와 함께 현장에 갔던 줄리아노가 “라오콘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또한 플리니우스는 청동상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대리석이다. 그래서 원본 청동상을 따라 만든 복제품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이 역시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끼워 맞추기 위한 가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플리니우스가 말한 라오콘이라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제작 시기와 작가 등에 대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과연 이 작품의 진실은 무엇일까? 결국 이 논쟁은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참고서적]

조반니 파피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정진국 옮김, 글항아리)
안톤 질 <미켈란젤로> (이명혜 옮김, 생각의나무)
최연욱 <위작의 미술사> (생각정거장)
리사 맥게리 <이탈리아의 꽃 피렌체> (강혜정 옮김, 중앙북스)
김혜경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 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