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내 님에게 내어 줄, 메꽃

뜨겁다. 이 시기의 햇볕은 정말 뜨겁다.

감성지수 높아지는 날엔, 호미자루 내던지고 어디로든 달려가는 청마담이지만, 8월엔 한눈 팔 겨를이 없다. 다른 이들 모두 떠나는 여름휴가도 청마담에겐 없다. 점심도 거른 채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아로니아 수확에 전념하는 날이 7월 중순부터 늦가을까지 계속된다.

오늘도 여지없이 온종일 땀을 흘렸고 택배 기사가 방문하여, 송장 붙여놓은 박스 모두 다 걷어간 저녁 무렵에나 한숨 돌린다.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쪽마루에 걸터앉았는데, 잔디위에 살포시 연분홍빛 메꽃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날, 근처 풀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메꽃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어렸을 때 ‘미뿌리’라 하여 땅 속 뿌리줄기를 캐먹곤 했는데, 메꽃의 뿌리라는 의미에서 그리 불렀으리라. 뿌리줄기에는 전분과 비타민이 풍부해 구황식물로도 유용했다.

보리나 밀의 수확이 끝난 시기에, 밭을 갈아엎으면 뿌리줄기가 하얗게 뒤집어지는데 그것을 한 소쿠리씩 주워 담아 밥 위에 얹어 쪄먹기도 하고 잘게 썰어 밀가루 옷 입혀 바삭하게 튀겨먹기도 했다. 

마음 급한 아이들은 익히지 않고 날로 먹기도 했는데 생식(生食)의 경우, 과하게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하니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시절 메꽃의 뿌리는 아이들에게 심심찮은 간식이었지만, 어른들은 무척 싫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꽃은 땅 속 뿌리줄기 사이에 싹눈이 있어 아무리 잘라도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여느 풀들과 달리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산소에 한번 자리하는 날엔 완전 골칫거리다.

어린이 노래 2절에도 등장한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 호미 들고 괭이 메고 /
뻗어가는 메를 캐어 / 엄마 아빠 모셔다가 / 맛있게도 냠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정말 엄청나게 뻗어간다. 메꽃은 생김새가 깔때기 모양이기 때문에 종종 나팔꽃이라 잘못 불리기도 한다. 식물분류학상, 둘 다 메꽃과(科)임에는 틀림없지만 속(屬, genus)이 다르다. 
 

  

 
나팔꽃 속(屬)의 나팔꽃은 주로 보라색으로 피어 은근히 자극적인데 비해, 메꽃 속(屬)의 메꽃은 엷은 분홍색이라 그런지 수수하게 느껴지며, 주로 풀밭에서 기어 다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잎 모양 역시 다르다.

메꽃의 잎은 좁고 성인의 검지 크기만큼 길쭉한 장타원형이며, 나팔꽃의 잎은 넓은 모양으로 양쪽으로 갈라짐이 있다. 그리고 둘은, 꽃이 피어있는 시간대가 다르다. 개화 시간이 열두 시간 정도인 것은 같으나 나팔꽃의 경우, 한밤부터 오전까지 피었다가 한낮이면 오그라들게 되므로 늦게까지 자고 한낮이 되어 활동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메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낮 동안 내내 피어 있어 누구나 꽃을 볼 수 있다.

풀밭에 살그머니 피어있는 메꽃은 ‘고자화’라는 우울한 별명이 있다. 그것은 생식기인 꽃이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꽃 속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완전화(갖춘꽃)이기는 하지만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아야만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식물의 ‘이형예현상(異型蕊現象)’으로 이런 식물이 여럿 있다.

개나리도 그렇고 메일, 부레옥잠에서도 볼 수 있다. 어쩌면 메꽃은 땅 밑 뿌리줄기의 왕성한 세력으로 종족 번식에 승부를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이는 ‘허우대’의 기능은 허술할지라도, 숨겨진 ‘아래’의 힘은 그 어느 식물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가히 훌륭한데 ‘고자화’라니 참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뿌리뿐 아니라 꽃은 차로도 즐긴다. 혈압과 혈당을 떨어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하니, 올 여름엔 은은한 메꽃차를 만들어 고운 내 님에게 정갈하게 내어봄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