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나요"

 
가을이 물들어가는 서울숲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두사람이 천천히 산책로를 걸으며 이야기를 한다. 한사람이 폭풍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면 다른 한사람은 “그랬군요. 그래서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라고 호응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힘들었던 마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 마음에 공감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지만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지난 9일과 16일 두 번에 걸쳐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정혜신 박사와 함께 하는 속마음 산책이 열렸다. 속마음 산책은 시민단체 공감인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1시간 반 동안 서울 숲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산책을 하는 동안 공감자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않고, 화자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들어주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한다. 
     
화자와 공감자가 만난다는 것
 

 
산책을 나가기 전 공감자와 사전모임을 가졌다. 처음 공감자로 왔는데 어떤 마음이 드는지, 어떤 것들이 궁금한지 이야기를 듣고,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화자와 공감자가 만나는 것은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이에요. 존재와 존재가 만난다는 것은 성별, 나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사연을 읽고 사연에 끌려서 오늘 사연의 주인공과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확 풀어져요. 그럼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어있어요. 화자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들어주면 화자는 ‘나에게 집중하고 있구나 나를 존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요. 내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존재의 핵심은 감정이고 느낌이라고 했어요.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하면서 가졌던 떨림이나 끌림이나 그런 느낌을 꺼내 놓고 만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그 느낌 그것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한 시간 동안 공감자 사전모임을 하는 사이 화자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두시 반이 되자 화자와 공감자가 짝을 지은 뒤 서울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1시간 30분 동안 서울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분도 있고,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 하는 분도 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각자의 사연으로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종료 20분 전에 공감자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산책을 마무리 하고 헤이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온 화자와 공감자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를 접착메모지에 적어서 보드에 붙인다. 
     
“안개 같이 모호했던 마음 속 감정들이 선명하고 또렷해져 안심이 되고 후련합니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는 것을 또 한 번 알게 됩니다.”
“마음껏 얘기 할 수 있었고요, 둥지를 얻은 듯 든든한 마음입니다.”
“홀가분해요.”

“단지 듣기만 했는데 제가 공감 받는 마음입니다.”
“집중해서 듣고, 마음을 맞추는데 온 에너지를 쏟다보니 어느새 주체할 수 없는 공감, 눈물, 안타까움 그리고 사랑을 느꼈어요.”
“긴장 많이 했는데, 아이처럼 한하게 웃는 화자를 보고 긴장의 얼음이 녹는 기분이 들었어요.”
“상대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들었어요. 연결된 기분도 들고 벅차요. 한 존재가 살아온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정혜신 박사는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글을 꼼꼼히 읽어보고 나중에 함께 이야기할 것들을 따로 체크해 둔다. 산책을 나갔던 모든 팀이 들어오면 ‘산책하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 나눈 사람들
 

  

오늘은 청소년 몇 명이 함께 왔다. 정혜신 박사는 한 청소년에게 물었다. 

정 박사 : “오늘 이야기 하고 나니까 어땠어요?”
청소년 : “공감자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려고 했는데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오고가는 대화가 좋았고, 대화를 할 때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가족들과는 이야기하기 힘들고 친구들과는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데 한 시간 반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집중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청소년과 함께 이야기한 화자에게도 어땠는지 물었다.
 
“내가 화자인데 저 친구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더 많이 물어봤어요. 들어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하려고 했어요.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고 ‘존재를 만난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보석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정혜신님은 다른 화자와 공감자에게도 산책했던 느낌을 물었다.

“공감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4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오늘 작정하고 했어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인 이야기를 하거나 말을 끊지 않았어요. 나에게는 완벽한 공감자였어요. 이야기하고 나니까 시원해요.”
“드디어 내가 ‘나의 감정을 만났구나’라고 느꼈어요.”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가 옆을 바라보면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또 막 말하고 있는데 나 혼자 이야기 하고 있나 하고 옆을 보면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분이 었었어요. 존재에 집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화자 중에는 멀리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분도 있었다. 

“스무살인 아이가 재수를 하고 있어요. 불안한 모습에 같이 불안해 하고 있어요. 아이와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난주 산책을 하고 나서 아이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아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서운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후 아이와 좀더 가까워졌어요.”

강원도에서 올라온 분도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어요. ‘내가 바닥을 치고 올라올 힘이 없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절실하게 화자를 해보고 싶었다. 온전한 마음의 화자가 되어 죽을만큼 힘들었던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싶어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이야기를 주고받고 눈물을 흘리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이렇게 산책을 마무리하게 됐다.

왜 일상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을 속마음 산책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면 공감인에서 진행하는 속마음 산책을 꼭 신청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