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캠페인 최대의 적은?

 

 
“애국 시민 여러분! 저희는…”
 
왼손은 스피커처럼 입에 대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고 아랫배에 힘주고 큰 소리로 외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열심히 나눠줄 유인물 접기에 바빴다. 바삐 걸음하시는 분들과 어색한 눈 맞춤하며 홍보물 겨우 나눠주며
 
“기본소득 캠페인 중입니다. 한 번 읽어 봐 주실래요?” 하고 살갑게 부탁하기 바빴다.

 
반백의 나이에 이십대 대학생 시절 이후 거의 처음으로 거리 홍보전에 나섰다.
 
서울로 치면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대전의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가게마다 흥겨운 음악을 틀어 놓아서 활력이 넘쳤다.
  

 
거기에 접이식 탁자 겨우 펴고, 기본소득 도서 몇 권과 팸플릿 몇 권 펼쳐 놓고, 자리가 부족해서 포스터는 펼쳐놓지도 못하고, 작은 현수막 하나 붙여놓고, X배너 하나 세워 두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가는 이의 눈길을 끌 수도,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현장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사 꾸벅하고, 기본소득 홍보물을 손에 꼭 쥐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기본소득 홍보물입니다.”

“묻지도 따지도 않고 나눠주는 기본소득을 우리는 주장합니다.”

각자 생각나는 짧은 구호와 함께 홍보 전단을 나눠주었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우리와 눈 마주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이게 뭐냐고 시비 거는 분들은 없었다. 어쩌면 다행이 아닌지도 모른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플이라고 하지 않나?
 
괜히 거절당하면 민망하니 자꾸 눈치를 보게 되었다. 우리 공화당의 태극기 집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혹시나 어르신들이 시비 걸까봐 괜히 겁먹었는데 실상 적은 따로 있었다.
 
바람이었다. 자꾸만 바람이 불어 X배너가 넘어지고, 홍보물이 날아가서 몇 번이나 세우고, 주우러 다녀야 했다.
  
둘째는 다정한 연인들이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또는 음료를 들고, 다른 손은 꼭 잡고 가고 있으니 기본소득 홍보물을 전해줄 방도가 없었다.
 
그동안 거리 서명전 이야기를 들으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참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 거리에서 전도하시는 분들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요즘 거리에서 유니세프 또는 국경없는 의사회 등 단체 후원 약정을 이끌어 내는 젊은 청년들은 정말 찾아가서 노하우라도 전수 받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예정된 한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비해온 홍보물이 바닥이 났다. 사람들은 넘쳐났고, 다행히 잘 받아줘서 배포는 수월하게 마쳤다.
  

 
다만 그 홍보물 글귀를 몇 사람이나 읽을지, 몇 분의 마음에 변화를 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그 씨가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활짝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홍보물을 접고, 활짝 웃으며 나눠 드렸을 뿐이다. 거기까지가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번에는 진짜 왼손 입에 대고, 오른 손 허리춤에 대고, 아랫배에 힘 줘서
 
“시민 여러분, 저희는 기본소득 대전네트워크 회원들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선 까닭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월 60만
원씩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월 60만원씩 정부가 여러분에게 현금으로 따박따박 준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대전 시민 여러분, 잠시 시간을 내어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외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발걸음이 멈추고, 그들의 손길이 기본소득 책과 팸플릿을 향하도록 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한 시간 여의 짧은 그러나 길었던 ‘기본소득 거리 캠페인’이 끝이 났다. 우리는 가져온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만치 우리 공화당 태극기 부대의 거리 행진 물결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팥빙수가 기다리고 있는 계룡문고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기본소득 거리 캠페인은 9월 선선한 가을에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