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로 수천억 갈취한 일당 구속… 공짜 점심은 없다

[ 고란의 어쩌다 투자 ]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하고 기사를 쓰는데도, 저 깊은 마음 한구석에선 기사가 틀리길 바랬다. 사실이면 피해를 볼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는 건 한 순간이지만, 투자자들 피해를 복구할 방법은 없을 테니. 지난해 12월 썼던 <‘출금 안 되는 수상한 거래소…“참 용감한 투자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등장한 A거래소 얘기다. 당시 A거래소에 대한 ‘먹튀’ 의혹을 다뤘다. 정황상 의혹이 아니라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명징한 증거는 없었다. 투자자들은 필자에게 욕설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도,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는 건 시간 문제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결국, 이달 초 경찰이 A거래소 대표 등을 무더기 검거했다.
 
경찰 “거래소로 1770억원 가로챈 일당 구속”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A거래소 대표 김모(45)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을 도운 1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1명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인천 청라 등지에 암호화폐 거래소 3곳을 운영하며 고객 2만6300여 명으로부터 자체 개발한 루시ㆍ스케치 등 28종의 코인 거래대금 1770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등은 또 2017년 4월부터 최근까지 인천과 광주 등지에서 “투자를 하면 120~150%의 수익을 분할지급하겠다”며 1960명으로부터 585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ICO(암호화폐를 통한 자금모집)를 통해 돈을 끌어 모은 셈이다.

 

A거래소 대표가 김씨? 민씨나 신씨 아니야?
투자자라면 경찰 발표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A거래소의 대표는 민모(33)씨다. A거래소가 문을 열 때부터 대표를 맡았다가 지난해 12월 물러난 뒤 지난 3월 다시 대표로 취임했다. 민씨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대표를 맡았던 사람은 신모(35)씨다. 
 
경찰 발표에 등장한 대표 김씨는 2017년 9월부터 A거래소 대표를 맡아오다 2018년 3월 사임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18년 4월 민씨가 A거래소의 대표로 등기됐다. 김씨는 또, 사실상 A거래소의 운영법인이라고 볼 수 있는 A메니지먼트사에서 2018년 6월까지 사내이사를 지냈다. 이후 A메니지먼트는 이번 사건으로 역시 구속된 최모(36)씨와 민씨가 2018년 4월부터 공동대표를 맡아오다, 그해 6월 단일 대표 체제로 바뀐 뒤, 역시 신씨를 거쳐 현재 대표는 민씨다. 
 
A거래소 피해자 소송을 맡은 법률사무소 황금률의 박주현 대표변호사는 “대부분의 거래소가 대표로는 허수아비를 세우는 거고 진짜 대표는 뒤에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곧, 투자자들이 대표라고 믿었던 민씨나 신씨는 소위 ‘바지 사장’이었던 셈이다.
 
A거래소 한 곳 아님? 왜 3개야?
지난해 가을부터 A거래소가 고객들의 출금 요구에도 투자금을 인출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코인 투자자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A거래소 관계자들이 나와 또 다른 거래소를 만들어 한 탕 하려 한다는 말이 돌았다. 경찰 수사 결과, 결국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경찰이 언급한 A거래소 이외 두 곳은 C거래소와 B거래소다. 2018년 말 설립된 C거래소는 신씨가 대표를 맡아오다 A거래소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으로 재산이 가압류 당하자, 또 다른 신모(29)씨로 대표가 교체됐다. C거래소에서도 이번 사건의 주범인 김씨는 감사를 맡았다.
 
B거래소는 지난 7월 말로 이미 파산했다. 양모(38)씨가 대표를, A메니지먼트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최씨가 감사를 지냈다. 양씨는 또한 C거래소의 사내이사를 역임했다.

 

최씨는 또 A*** 이라는 다단계 회사의 대표를 지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A업체와 A거래소는 거의 한 몸과 다름없으며, A업체에서 만든 코인 대부분이 A거래소에 상장됐다고 한다. 어김없이 이 회사에도 양씨가 사내이사로 등장한다.
 
박주현 변호사는 “A거래소 당시 법적 대표 신씨에 대한 재산 가압류 결정이 만들어졌기에 망정이지 그 조치가 없었다면 더 많은 거래소를 만들어 한 탕 벌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씨가 지난 3월 설립을 시도했던 X거래소는 논란에 휩싸여 실제 영업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참고로 X거래소의 감사는 앞서 B거래소의 대표를 맡았던 양씨다.
 
결국, 같은 일당이 한 탕 벌였다
필자가 써놓긴 했지만 다시 읽어봐도 너무 복잡하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주모자 김씨가 뒤에서 A거래소를 통해 한 탕 벌였고, 같이 한 탕했던 이들이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갈취했다는 얘기다. 
 
A거래소는 소위 벌집계좌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 모았다. 벌집계좌에 들어간 돈은 법인이 마음대로 써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고객의 예치금을 횡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렇게 위험한 벌집계좌를, 그것도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래소를 이용할 투자자는 별로 없다. A거래소는 그래서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 페이백 이벤트를 열고, 고급 외제차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페이백 이벤트는 현금을 입금하면 당장 얼마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5% 페이백을 해줬다. 100만 원 입금하면 바로 5만 원을 돌려준다는 얘기다. 예금으로 환산하면 하루 이자가 5%다. 연율로 따지면, 1800%를 웃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투자자들 사이 불신이 커졌을 때에는 페이백을 10%로 늘렸다. 연율로 환산한 수익률이 3650%에 달한다는 의미다. 물론, 일단 거래소 계좌에 들어온 돈은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출금해 주지 않았다.
 
페이백 이벤트보다 투자자들의 대박 심리를 자극한 것은 거래소 자체 코인의 상장이다.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배당을 주는 코인이 무더기 상장됐다. 다른 거래소엔 거래가 되지 않기 때문에 A거래소에서 결정된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인 셈이다. 가격 조작이 아주 쉽다.
 
지난해 11월 상장한 어떤 코인은 첫 상장가가 0.5원인데 상장 직후 가격이 2만~4만 원까지 뛰었다. 400만~800만%에 이르는 믿지 못할 상승률에 일단 사고 보자는 이들이 몰렸다. 차트로만 보자면 최고 가격이 1조 원이다(실제로 1조 원에 거래가 체결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후 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30원으로 수직 낙하했다. 당시 코인 커뮤니티에는 “7000만 원 투자했는데 25만 원 남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런 식의 경품 이벤트와 가격 조작은 다른 거래소 운영의 롤 모델이 됐다. 김씨의 사주를 받아 다른 거래소를 차린 것인지, 아니면 A거래소에서 보고 배운 뒤 새로 거래소를 차려 나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수법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갈취했다.
 
Rani‘s note  공짜 점심은 없다
벌집계좌에 들어간 돈은 내 돈이 아니라 거래소 돈이라고 여러 번 얘기한 듯 싶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는 “그렇게 좋으면 너님이나 하세요”라고 응수하라고 조언했다. 이미 사건이 터진 마당이라 이 업계와 관련된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거래소에 돈이 얼마라도 남아 있어 피해를 보상 받았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다시는 이런 식의 사기 거래소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빨리 규제가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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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ind (https://joind.io/market?id=527)